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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기업들 진정 담은 ‘재난성금’ 개성에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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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24 11:01 조회3,3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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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기업들 진정 담은 ‘재난성금’ 개성에 꼭 전하고 싶다”

등록 :2020-09-23 19:31수정 :2020-09-24 02:07

[짬] 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 정기섭 대표공동위원장

 

정기섭 개성공단기업대책위 위원장은 지난 21일 인터뷰 내내 꽉 막힌 남북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애써 울분을 참았다. 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정기섭 개성공단기업대책위 위원장은 지난 21일 인터뷰 내내 꽉 막힌 남북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애써 울분을 참았다. 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코로나19와 수해로 겪는 어려움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15억원을 모았는데 보낼 방법이….”

 

정기섭(69) 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대표공동위원장은 착잡하고 안타까운 낯빛을 숨기지 못했다. 통유리창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환하게 빛나던 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 카페의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대책위는 지난 8월12일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돕고자 모금을 시작했다. 2016년 2월10일 박근혜 정부의 ‘전면 중단’ 조처와 일방적 철수 지시, 이튿날 북쪽의 ‘폐쇄’ 조처 등으로 개성공단에서 내쫓긴 지 4년7개월이나 되면서 공단 입주 기업인의 사정도 매우 어렵지만, 코로나19와 수재의 ‘2중 재난’에 처한 북쪽 개성공단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수해 ‘이중고’ 외면 못해
지난달부터 한달 남짓 15억원 모아
60여업체·유관기관 동참…현물도
“북쪽에서 받아주기만을 학수고대”

 

 

공단 폐쇄 이후 4년7개월 ‘희망고문’
“촛불정부 ‘교류 돌파구’ 결단 내려야”

 

 

개성시는 지난 7월24일부터 8월13일까지 도시가 전면 봉쇄됐다. 한 탈북민이 강화도에서 헤엄쳐 개성으로 월북한 사실이 알려지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19 유입을 차단하겠다며 국가방역 단계를 ‘최대 비상체제’로 높이고 개성시 폐쇄를 지시한 탓이다. 그에 더해 긴 장마에 따른 집중 호우와 잇단 태풍으로 수해를 입었다. 대책위 사람들이 ‘개성 사람 돕기’에 나선 까닭이다.

 

정 위원장은 “동병상련의 심정”이라고 했다. 대책위 임원들은 지난 8월21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모금을 마치는 대로 성금을 북쪽에 전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사실상 단절 상황이라 정부도 마땅한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진정을 담은 이 작은 정성을 꼭 북쪽에 건네고 싶은데 방법을 찾지 못하겠네요.” 그는 또한번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번 모금엔 대책위 소속 기업 가운데 60곳이 어려운 형편에도 십시일반했다. 현대아산과 우리은행 등 개성공단 운영에 관여한 ‘유관기관’도 거들었다. 그렇게 ‘15억원’이 모였다. 현물로 참여한 곳도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필수적인 마스크 수십만장이 그렇게 모였다. 현물의 현금 환산 방식은 제조원가 기준이어서, 판매가를 기준으로 하면 모금액 규모가 더 커진다. “북쪽이 받겠다고만 하면 모인 현금도 밀가루나 설탕 같은 쉬 상하지 않는 생필품과 코로나19 방역 물품 중심으로 바꿔서 보낼 생각이에요.” 그는 이미 ‘계획’이 있다. ‘대량의 현금’을 북쪽에 전달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정세가 어렵지만 북쪽 분들이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이렇게라도 신뢰를 쌓아서 꽉 막힌 남북 대화의 길도 뚫리고, 개성공단 문도 열리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어둡기만하던 정 위원장의 얼굴에 설핏 한줄기 빛이 스쳤다.

 

개성공단 문이 닫히기 전까지 활발하게 가동중이던 입주기업 123곳은 그뒤 4년 7개월간 벼랑끝에 몰리다 못해 절벽으로 떨어져 ‘날개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5곳은 공식적으로 법인을 청산했다. 23곳은 사실상 폐업 상황인데 법인 청산조차 못하고 있다. 법인을 청산하기 전 부채를 갚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의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2019년 1월1일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사람들의 기대가 한없이 부풀었다. 그러나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2017년 5월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곧 공단 문이 열리겠지’ 기대가 컸어요. 그런데 아직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요.”

 

정 위원장은 지난 4년 7개월의 세월을 두고 “너무도 길고, 너무도 잔인한 희망고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 하자는대로만 하면서 어떻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겠어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이런 현실을 알고 분개해야 해요.” 그는 낯빛이 붉어지고 나지막하던 목소리가 높아지자, 분을 삮이려는 듯 숨을 골랐다.

 

개성공단 문이 닫힌 뒤로 대전에 있던 공장마저 폐업한 정 위원장은 최근 마스크 공장을 새로 가동했다. 하루 30만장 생산 규모로, 직원이 60여명이다. 개성공단 입주 공장에서 1000여명의 북쪽 노동자를 고용하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아직도 개성공단 문이 열리기만 바라며 제곁을 떠나지 않은 ‘필수 직원’ 4명이 있어요.” 정 위원장이 고심 끝에 1981년 창업한 ‘에스엔지’의 대표이사이자 ‘40년 의류제조업자’의 경력을 뒤로하고 마스크 생산이라는 새 길에 들어선 건, “필수 직원 4명과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개성공단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버틸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눈물없이 바라볼 수 없는 몸부림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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