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소식

홈 > 소식 > 새소식
새소식

[영화 그림자꽃] “북녘 가족에 돌아가고픈 애엄마 이야기로 봐주길” (2021. 10. 2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1-02 09:34 조회2,027회

본문

“북녘 가족에 돌아가고픈 애엄마 이야기로 봐주길”

등록 :2021-10-27 04:59수정 :2021-10-27 10:42

다큐영화 ‘그림자꽃’ 27일 개봉
주인공 김련희씨·이승준 감독 인터뷰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김련희(사진 왼쪽)씨와 이승준 감독이 다큐영화 <그림자꽃>에 대해 얘기하면서 웃고 있다. 오승훈 기자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김련희(사진 왼쪽)씨와 이승준 감독이 다큐영화 <그림자꽃>에 대해 얘기하면서 웃고 있다. 오승훈 기자

 

“전 딸 하나를 둔 평양의 평범한 주부였어요. 남편은 김책공업대학 부속병원 의사였고, 전 양장점 직원이었죠. 원래 간이 안 좋아 평양에서 치료를 받다 완치가 안 돼 2011년 5월 중국 친척집으로 요양차 두달 일정으로 갔는데, 북한과 달리 중국은 병원비가 너무 비싼 거예요. 북한으로 돌아갈 여비 마련을 위해 중국 식당에서 일하다 탈북 브로커를 만나게 된 거죠. ‘남한에서 잠깐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북한 여권을 넘겼는데,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죠.”

 

북송을 희망하는 최초의 북한이탈주민 김련희(52)씨는, 자신의 삶을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다큐영화 <그림자꽃>(27일 개봉)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25일, 이 감독과 함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수더분한 주부의 모습이었다.

 

다큐영화 &lt;그림자꽃&gt;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다큐영화 <그림자꽃>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2011년 9월, 그는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원치 않게 한국 땅을 밟았다. 입국 직후 이뤄진 국가정보원 조사부터 일관되게 북송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률상 대한민국 국민인데다 북한이탈주민을 북송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밀항과 위조 여권을 알아보던 그는 국외 추방을 노리고 자신이 ‘탈북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간첩 행위를 했다’며 자진 신고를 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2015년 7월 <한겨레>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사실들이다. 이 감독은 이 기사를 보고 김씨를 만난 뒤 제작에 착수했다. 그는 세월호를 다룬 다큐 <부재의 기억>으로 지난해 한국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촬영 8개월째인 2016년 3월, 김씨는 베트남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신청을 하기도 했다. “‘북한으로 보내달라’ 했지만 거부당했어요. 대구지검은 이 일과 페이스북 등에 쓴 북한 관련 글들을 문제 삼아 지난해 12월 단 한번의 조사도 없이 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어요. 1월에 열린다는 재판은 지금까지 무기한 연기됐네요. 2018년 5월 여권이 나왔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3년째 출국금지 상태예요.” 정권이 바뀌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큐영화 &lt;그림자꽃&gt;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다큐영화 <그림자꽃>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단 한번도 그에게서 적의를 거두지 않았지만, 그를 지탱해준 것은 호의를 베푼 남녘 사람들이었다. “권오헌 회장님을 비롯해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분들은 정말 남녘에서 만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집 없어 떠돌 때 거처를 마련해주고 곁을 지켜주셨죠. 제가 최근 간암 수술을 했는데 이분들이 절 보살펴주셨죠. ‘이게 한 핏줄이구나’ 느꼈어요.”

 

이렇듯 고난 속에서도 생은 지속된다. <그림자꽃>은 생이별한 김씨 가족의 고통을 응시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에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공장에서 일을 하고 홀로 밥을 먹던 김씨는, 함께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과 오랜만에 만나 얘길 나누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평양의 김씨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이 감독의 지인인 핀란드인 다큐 감독이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두차례 촬영한 다큐 속 평양 장면에서, 김씨 가족들은 밥을 먹고 일상을 보내며 김씨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감독은 “북한 사람들이나 탈북자들도 우리와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한 목표였기 때문에 평양 장면은 꼭 넣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김련희(왼쪽)씨와 이승준 감독이 다큐영화 &lt;그림자꽃&gt;에 대해 얘기하면서 웃고 있다. 오승훈 기자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김련희(왼쪽)씨와 이승준 감독이 다큐영화 <그림자꽃>에 대해 얘기하면서 웃고 있다. 오승훈 기자

 

평양 장면을 거론하며 “남편이 의사였으면 중산층 아니었냐”고 묻자 김씨는 “중산층 아니었다. 남한과 달리 북에서 의사는 그냥 공무원이다”라며 “남편보다 양장점에서 일했던 제 월급이 더 많았다”고 했다.

 

김씨가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은 없는 걸까. 이 감독이 말했다. “이제 한국 정부가 조금 통 크게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북송하면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거라고 보는 거 같은데 ‘이용하면 그러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김련희씨를 보내면 다른 북한이탈주민들도 보내달라고 할 거라는데 심사를 거쳐 북송을 간절히 원하는 경우, 다시 보내주는 것도 인도주의잖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김씨는 “‘감독이 빨갱이’라는 등 부정적 댓글이 많더라. 그분들께 가족이 북에 억류돼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애 엄마의 이야기로 봐달라”고 했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10년째 북한으로 보내 달라는 여성, 정부는 왜 그를 붙잡아두는가 [다큐로 보는 세상]

한국일보 고경석 입력 2021.11.02. 04:30
영화 '그림자꽃'. 엣나인필름 제공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10년째 정부에 요청하는 여성이 있다. 불법인 줄 알면서 여권위조와 밀항을 알아보기도 했다. 간첩이라고 하면 강제 추방을 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내가 간첩이니 체포하라’고 경찰에 신고해 구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발은 꽁꽁 묶여 있다. 정부는 매달 꼬박꼬박 ‘출국금지’ 통지서만 보내줄 뿐이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한국에 사는 유일한 평양시민

김련희(52)씨는 한국에 사는 평양시민이다.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탈북민은 아니다. 2011년 간 질환 치료를 위해 중국 친척집에 머물던 중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브로커에게 여권을 건넸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탓에 일은 점점 꼬여갔다. 한국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쉽지 않을 거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브로커에게 여권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권을 포기하고 무리를 이탈했다간 다른 탈북민들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어 일단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다. 결국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사정을 잘 설명하면 다시 북으로 보내주겠지.’ 그의 두 번째 오판이었다.

그는 입국하자마자 곧바로 국가정보원을 찾아가 재입북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이를 거부했다. 김련희씨에 따르면 국정원은 오히려 이렇게 협박했다. "너 간첩 임무 받고 내려왔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만 써라. 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여기서 나갈 수 없다. 네가 국정원에서 죽더라도 그걸 알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결국 그는 전향서를 쓰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사회에 나가면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으로 갈 수 있겠거니 했지만 국정원은 그에게 여권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김련희씨는 북한의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아버지는 TV공장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큰 병원의 의사였다. 김씨의 남편 리금룡씨도 대학병원 의사(북한에선 의사의 수입이 일반 공무원과 비슷하다고 한다)로 일한다. 평양에 있을 때 김씨는 양장점에서 일했다. 그가 재입북을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어서다.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못하는 게 가족"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혼자 살 바엔 죽는 게 낫겠다며 몇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해외로 추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간첩행위를 했다고 허위자백 하기도 했단다. 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고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영화 '그림자꽃'. 오른쪽 세번째가 김련희씨의 남편 리금룡씨고 왼쪽 네 번째가 딸 리련금씨다.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그림자꽃', 김련희씨의 북한 가족도 촬영

김련희씨의 파란만장한 삶은 지난달 2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꽃’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2015년 한겨레 보도로 김씨의 사연을 알게 된 이승준 감독이 2018년까지 3년간 촬영해 완성한 영화다. 영화에는 뉴스로 보도된 김씨의 기구한 사연 이상이 담겨 있다.

김씨가 북에 있는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살고 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는 종종 딸과 통화하며 안부를 전한다. 딱 한 번이지만 북에 있는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제3국을 경유하면 북한과도 얼마든지 통화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들은 북에 있는 가족과 전화도 하고 돈도 보낸다. 북한 주민 접촉 행위는 법에 의해 금지돼 있지만 '가족인 북한주민과 회합·통신하거나 가족의 생사확인을 위해 북한 주민과 접촉한 경우’는 사후 신고 대상에 해당해 적절한 신고만 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 평양에 사는 김씨의 가족을 찾아가 촬영한 영상까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몰래 찍은 것도 아니고 현지의 정식 협조를 받아 촬영했다. 물론 촬영을 이승준 감독이 직접 한 건 아니다. 이 감독은 “영화제를 다니다 알게 된 핀란드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미카 마틸라가 대신 북한에 가서 촬영해 보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탈북민들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씨와 만난 한 탈북민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전 어린 시절부터 남한 생활을 동경해왔어요. 조직생활이 숨막혔고 늘 자유를 갈망했어요. 북한에서 나오면서 가장 좋았던 게 더 이상 김일성, 김정일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언니(김련희)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죠. 생각이 다를 뿐 틀린 건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을 굳이 붙잡아놔 봐야 제대로 생활이 되겠어요?”

영화 '그림자꽃' 중 한 장면. 2015년 10월 서울 종로구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를 방문하려는 김련희씨를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재입북 탈북민 지난 10년간 29명

팬데믹 전만 해도 매해 1,000명 이상이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는 200여명으로 줄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 거주 탈북민은 약 3만 4,000여 명. 그 중 2010~2020년 10년간 북한으로 재입북한 탈북민은 공식 확인된 것만 29명(이 중 재탈북자는 5명)이다. 대부분 제3국으로 출국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소재파악이 안되는 탈북민이 900여 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당국이 파악하지 못하는 재입북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식 귀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을 정부가 다시 돌려보낸 경우는 없다. 2019년 북한 오징어잡이배에서 동료 선원들을 살해하고 남한 귀순 의사를 밝힌 선원 2명을 북송한 적이 있지만, 이는 귀순 절차를 밟기 전에 해당한다.

재입북을 원하는 탈북민은 김련희씨만이 아니다. 한국으로 망명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아내도 자녀가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김련희씨와 마찬가지로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 11인도 여전히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그에 관한 기사에는 온갖 악성 댓글이 달린다. 입에 담김 어려운 욕설과 무시무시한 위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남아 있지. 왜 왔어”라고 성난 듯 고함 치는 노년의 남성에게 김씨는 “제발 좀 보내달라”고 외친다.

영화 '그림자꽃'. 엣나인필름 제공

김련희씨를 붙잡는 게 나을까, 북송하는 게 나을까

탈북민의 북환 송환이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는 물론 북한과의 관계, 정부와 여당의 국내 정치와도 연관된 사안이라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김련희씨를 북으로 보낼 법적 근거가 없다곤 하나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탈북민은 아니지만,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체결 당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 63인을 북으로 송환한 적이 있다. 정부의 입장과 국내 여론을 중요하지만, 한국 정부가 인권을 등한시한다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무시할 순 없다.

국가 안보가 중요하다면 김씨를 한국에 묶어 놓는 게 썩 좋은 방법은 아닐 듯하다. 그는 대놓고 북한 체제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한다. 2015년 한겨레와 인터뷰에선 “김일성 주석은 저의 친부모 같은 분”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그는 “한국에 처음 와서 놀란 점들이 몇 가지 있다”며 “노후대책이 왜 필요한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제 집이 있을 텐데 왜 평생 내 집을 마련해야 하는지, 함께 쓰는 고속도로에 왜 통행료를 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그의 불온한 사상이 퍼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보다 북으로 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탈북민들이 간첩행위를 할 수 있으니 모조리 붙잡아둬야 한다면 이들 모두의 출국을 금지하고 국정원 인력을 대폭 확대해 이들을 면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이용선 더불어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제3국으로 출국 후 돌아오지 않는 탈북민은 2015년 664명에서 2019년 771명으로 4년간 107명 증가했다. 김련희씨를 북에 보내면 위험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이들부터 다시 붙잡아와야 한다.

검찰은 김씨가 탈북 및 한국 입국 과정에서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통해 알게 된 조사 방법, 신문사항, 그 위치 및 구조, 입소부터 퇴소까지 과정, 한국 생활 중 알게 된 다른 탈북자들과 신변보호담당경찰관의 신원 등이 북한에 누설되면 북한 대남 공작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북한은 이미 이 중 대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존에 재입북한 29명의 탈북민들이 알고 있는 정보만 모아도 김씨가 알고 있는 이상일 테니 말이다.

임기 내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임기 마지막 국회 시정연설에서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더욱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국가 안보와 남북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한 김대중 정부는 일찌감치 그 답을 문 대통령에게 알려줬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브라우저 최상단으로 이동합니다 브라우저 최하단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