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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생 김영주, 김정일 10주기 앞두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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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2-15 09:08 조회1,2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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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생 김영주, 김정일 10주기 앞두고 사망(종합)

송고시간2021-12-15 07:39

북한 2인자였지만 1973년 김정일 후계자 내정 뒤 자강도 유배

1993년 힘 없는 원로로 정계복귀…생전 마지막 모습은 2015년

북한 김일성 동생 김영주 95살 고령에도 지방선거 투표
북한 김일성 동생 김영주 95살 고령에도 지방선거 투표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2015년 7월 19일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투표에 참가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01세로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김정은 동지께서는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수훈자이며 공화국영웅인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김영주 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화환을 보내시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영주 동지는 당과 국가의 중요 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하면서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으며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 우리 식의 국가사회제도를 공고 발전시키는데 공헌하였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화환이 지난 14일 고인의 영전에 진정됐다.

1920년생인 김영주는 권력 핵심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지낸 김일성 시대 대표적 2인자다.

그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이후락 남한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했으며, 이 성명의 이행을 위해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실세였다.

그러나 1973년 김 주석이 후계자에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정하면서 힘과 세력을 잃었다. 김영주는 모든 직책을 내놓고 일가족과 함께 오지인 자강도 강계로 사실상 유배됐고, 측근 간부들도 전부 좌천됐다.

김일성 주석이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그가 걸림돌로 작용해 밀려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 장악을 확고히 한 1993년 국가 부주석과 정치국 위원에 선출돼 정계에 복귀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원로에 불과했다.

사망 전 마지막 공개활동은 2015년 7월 19일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때 투표했다. 조선중앙TV는 그가 투표를 마친 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향해 절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2인자의 위세는 사라졌지만,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조카 김정일보다 10년을 더 살았다.

한편 중앙통신은 이날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엄하진 전 주체음악예술발전관 관장 사망 소식도 전했다.

김일성상계관인은 북한의 문화예술 부문 최고의 상훈으로 엄하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기념곡 '선군 장정의 길'을 비롯해 '우리 수령님', '우리는 잊지 않으리', '조선로동당 만세' 등을 작곡했다.

北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北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2014년 4월 10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에서 유임이 결정된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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