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소식

홈 > 소식 > 새소식
새소식

일본, 납치문제 해결하지 않기 위한 납치문제 교섭?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3-28 10:52 조회25회

본문

일본, 납치문제 해결하지 않기 위한 납치문제 교섭?


  •  한승동 에디터
  •  
  •  승인 2024.03.27 13:15
 

교섭 재개와 결렬 반복하는 일본과 북한의 속셈

김여정 부부장 하루 새 엇갈리는 담화 발표

북-일, 지난해 3월부터 동남아 등에서 접촉

결렬이 전제된 모순된 접촉 유지 자체가 목표?

북-일 수교 가로막은 아베 신조, 그리고 미국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측으로부터 정상회담 제의를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 18일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2024.03.25. AP 교도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측으로부터 정상회담 제의를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 18일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2024.03.25. AP 교도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26일 또 담화를 통해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일본 쪽과의 어떤 접촉이나 교섭도 거부한다”고 밝혔다고 <아사히신문>이 27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김여정 부부장 하루 새 엇갈리는 담화 발표

하루 전인 25일 담화에서 김 부부장은 “최근에도 기시다 수상(총리)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빠른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우리에게 전해 왔다”고 밝혔다. 이는 김 부부장이 지난 2월 15일 담화에서 북일관계 현상을 대담하게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한 기시다 총리의 의회 발언에 “유의한다”한다며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주목을 끌었다. 지난 1월 5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기시다 총리에게 이시카와 현 노토반도 지진에 대한 ‘위문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26일의 김 부부장 담화는 지난 1월부터 이어져 온 북일 간의 이러한 고위급 담화나 발언을 통해 드러난 화해 조짐 분위기와는 방향이 좀 뒤틀려 있다.

북일, 지난해 3월부터 동남아 등에서 접촉

기시다 총리는 지금까지 김정은 위원장과의 ‘수뇌(정상) 회담’이 중요하다며 양국 간 고위급 협의를 거쳐 정상회담을 실현시키겠다고 공언해 왔다. <아사히>는 한일관계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해 3월과 5월 일본정부 관계자들이 북한 조선노동당 관계자들과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비밀리에 접촉했으며, 그 자리에서는 일본정부가 정부 고위관리를 평양에 파견하는 안도 논의됐다고 26일 보도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25일 담화에서 “기시다 수상이 또 다른 경로를 통해 빠른 시기에” 방북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해 왔다고 주장한 것도 그런 접촉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정부 관방장관은 25일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접촉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북일 간의 물밑 접촉 사실을 시인했다. 북일 간의 그 다양한 통로의 일본정부 쪽 담당자들은 내각(정부) 관방부와 외무성 관계자들이라고 아사히는 소식통들의 말을 근거로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에 앞서 보스토치니 우주 비행장에 도착하고 있다. 2023.9.13.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에 앞서 보스토치니 우주 비행장에 도착하고 있다. 2023.9.13. 로이터 연합뉴스

결렬이 전제된 접촉 유지 자체가 목표

일본과의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다며 “일본 쪽과의 어떤 접촉이나 교섭도 거부한다”는 단호한 어투의 26일 김 부부장의 담화는 일본 쪽의 이런 기대나 전망에 찬 물을 끼얹는 교섭 결렬 선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양쪽이 주고 받은 담화나 발언들을 보면,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양쪽은 애초에 정상회담 조기 성사를 목표로 삼았다기보다 그것을 명분으로 접촉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처음부터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분명한 선을 그어 놓고 접촉을 시작했다. 따라서 그 선을 다시 긋거나 서로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는 한, 그것을 상대방에게 압박하기 위해 파국도 불사하겠다며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기 위한 단호하고 결연한 언사들을 주고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접촉은 이어졌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결렬이 전제된 듯한 접촉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부부장의 26일 담화는 일본 쪽 기대에 찬 물을 끼얹긴 했으나, 그것은 결렬 선언이 아니라 더 나은 협상조건을 내 놓으라는 압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상호 모순되는 양쪽 주장

북한에게 물러설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선’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핵 및 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주권적 권리행사’ 앞에 그어져 있다. 그 선을 건드리는 순간 북한은 결렬을 선언한다. 25일 담화와 26일 담화에서도 강조했듯이 김 부부장은 (일본인)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이 끝난 것”이라고 못박아 왔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양국 국교 정상화는 교섭 자체부터 불가능하다는 자세를 오래 전(아베 정권 때)부터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모순과 반목의 기원

일본인 납치문제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총리가 평양을 전격 방문했을 때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직접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한 뒤 재발방지 약속까지 하면서 일단락된 문제다. 그때 북한은 납치한 일본인이 모두 13명이라며 그들 중 8명은 이미 사망했고, 5명은 살아 있다고 밝힌 뒤 생존자 5명을 일단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그 5명의 일본 귀향은 북에 남은 가족과의 관계 등을 정리할 때까지의 임시조치로, 단기간의 귀향 방문 뒤 다시 북한으로 돌려 보내기로 했다고 양국 정부는 공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 그들 5명을 북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납치된 일본인은 13명이 아니라 모두 17명이라며, 귀향한 5명 외에 나머지 12명 모두 북한의 발표와는 달리 살아 있다면서 그들 모두를 일본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4차 유엔 총회 특별회담 때 당시 일본 총리였던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담소하고 있는 모습. 2019.9.25. 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4차 유엔 총회 특별회담 때 당시 일본 총리였던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담소하고 있는 모습. 2019.9.25. 로이터 연합뉴스

북일 대립 부른 사건의 총책임자 아베 신조

그때 이 문제를 총지휘했던 사람이 당시 관방 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였다. 생존자 5명을 데리고 온 일본정부는 북일 수교까지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담아 발표했던 고이즈미-김정일의 ‘평양선언’을 사실상 파기하며 북에 대한 초강경 자세를 취하면서 일본 국내에 격렬한 반북 국민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이 아베 신조였다. 그는 나머지 생존자들의 무조건 귀환을 요구하면서, 피납자 귀환을 위한 관련 가족들 모임(‘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을 만들어 그들에게 반드시 나머지 생존자 일본 귀국을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아베 신조가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총리자리에까지 오른 데에는 그 사건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그때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일본 우경화의 선봉장이자 일본 내셔널리즘의 아이콘이었으며, 그 최대 수혜자가 됐다.

납치문제를 해결하지 않기 위한 교섭?

지금까지도 일본은 피납자가 17명이고 귀향한 5명 외에 12명이 모두 살아 있다며 돌려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12명을 모두 돌려보내지 않는 한 북일 국교 정상화는 물론 그것을 위한 교섭조차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이 얘기하는 ‘납치문제’다.

이에 대해 북한은 피납자가 13명이며, 8명은 이미 그 전에 사망했고, 생존자 5명은 돌려보냈으니, 납치문제는 이미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여정 부부장이 일련의 담화에서 거듭 확인한 것도 그것이고, 이미 끝난 일이라며 그것을 재론하겠다면 “접촉이나 교섭도 거부”하겠다고 못박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이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에 진심이라면, 납치문제를 교섭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교섭을 먼저 시작해서 국교를 정상화한 뒤, 또는 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그 문제를 쌍방이 논의, 조사해서 합의하는 쪽으로 해결순서를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정부는 애초에 납치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기 위해 교섭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할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이 17일 도쿄에서 열린 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4.3.17. 로이터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이 17일 도쿄에서 열린 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4.3.17.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의 과거사 책임 회피에 빌미 준 북의 납치 만행

북한에게도 납치 사실을 숨기다가 고이즈미 총리 평양 방문과 양국 수교 직전 상황에 가서야 그 사실을 털어 놓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렇게 속였으니 8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얘기를 어떻게 믿느냐며 돌려보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 용납될 수 없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 기간에 자행된 조선인 등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가한 납치, 연행, 강제동원 등의 무자비한 인권유린을 가리고, ‘일본도 피해자’임을 부각시켜 일본의 전쟁범죄 등 과거사 청산을 얼버무리게 만드는데에도 결과적으로 기여했다.

어쨌거나 북일 양국은 이처럼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적인 주장을 앞세우고 상대방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면서 교섭 재개와 결렬을 반복하는 기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시다 정부가 교섭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아베 신조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기시다 정부에게 나머지 12명의 피납자들(사실이든 아니든)을 모두 생환시키겠다고 한 약속은 정권 유지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자 기반 가운데 하나다.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와 지원단체(‘구하는 모임’)은 지난 2월 고령화한 피납자 부모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 “모든 납치 피해자의 즉시 일괄 귀국”을 실현하는 것을 조건으로 “(북한에게) (일본)독자적인 제재를 해제하는데 반대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운동방침을 정했다. (<아사히> 3월 26일) 그러니 기시다 정부로서는 더더욱 북과의 교섭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내세우는 선결조건을 보건대 전혀 해결될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기시다 정부로서는 교섭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런 사정을 미국 바이든 정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기시다 총리의 평양방문도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일본 쪽에 보낸 듯하다고 <아사히>는 썼다.

 

미국에 접근해 미일 밀월관계를 구축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사진은 2019년 5월 일본 지바현 모바라시 모바라 컨트리클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골프 코스를 돌고 있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모습. 2019.5.26.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에 접근해 미일 밀월관계를 구축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사진은 2019년 5월 일본 지바현 모바라시 모바라 컨트리클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골프 코스를 돌고 있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모습. 2019.5.26.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도 가담한 2002년 북일 수교 파탄사태

2002년 9월의 전격적인 평양방문 성과의 이행과 북일 수교를 막은 것은 아베 신조만이 아니었다. 미국 조지 부시 정부는 고이즈미 방북 한 달 뒤인 그해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대표로 한 미국 핵문제 협상단을 평양에 보냈고, 켈리는 그때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발끈했던 강석주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강경 대응 이후 북미관계가 험악해졌고,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던 북일 수교도 물건너갔다. 미국은 왜 하필 그 시점에 그 문제를 제기했을까. 미국은 북일 수교를 바라지 않았다.

북일 수교는 1990년대 초 동서냉전 붕괴 뒤 불발됐던 미중러일 등 이른바 한반도 주변 4대국의 남북한 '교차 승인'을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실현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었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뒤 한국은 소련(러시아), 중국과 수교했으나 북한의 붕괴를 기대했던 미국, 일본은 북한과 수교하지 않았다.

남북한의 4대국 교차승인은 동북아시아의 긴장 및 분단 해소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은 미군의 이 지역 주둔 명분을 없애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도 반복될 교섭과 결렬

기시다 정부가 북한과의 납치문제 교섭에 나서야 할 처지라는 것, 그러면서도 12명을 살려 보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일본 자민당 정부 쪽과의 교섭에 응하는 것은, 북일 교섭이 진전될 경우 2002년 평양선언에서도 합의한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보상/협력)금 등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과거사 청산 대가로 받아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일 수교가 북미 수교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갖고 있는 만큼 그것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를 바꾸고 북한의 안보 및 경제상황, 그리고 남북관계 및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꿀 연쇄반응의 시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미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중대사다. 일본 또한 북한과의 교섭과 관계 재정립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관여 및 영향력 증대, 그리고 일본 생존에도 필수적인 중요한 연결고리다.

따라서 양국은 앞으로도 교섭 재개와 결렬을 반복하면서 각자 더 유리한 때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브라우저 최상단으로 이동합니다 브라우저 최하단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