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푸틴 초대…미‧일, 중‧러 틈새 '자주 실용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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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6-19 09:46 조회29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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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푸틴 초대…미‧일, 중‧러 틈새 '자주 실용 외교'
- 이유 에디터
- 승인 2024.06.18 18:00
미국 "푸틴 침략 전쟁 선전장 안 돼"…불만 표출
베, 미‧일 비중 높이되 중·러 관계도 견지
"소련‧러시아, 베트남 인민에 크나큰 도움"
바이든 '선물 보따리' 챙기고 할 말은 다 해
베트남 '4불 국방정책'…어느 편도 들지 않아
시진핑, 마르크시즘-호치민 소환하며 구애
"베트남이 어느 강대국의 편도 들지 않는 균형 잡힌 외교 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 국빈방문에 이어 19일부터 이틀간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에 대해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이언 스토리 선임연구원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베트남, 푸틴 국빈방문 초대에 미국 불만 표출
"침략 전쟁 선전의 장 만들어 주면 안 돼"
미국 백악관이나 국무부 차원에선 푸틴의 베트남 국빈방문에 대해 공식 논평을 하지 않았지만, 주베트남 미국 대사관 대변인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해 작년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푸틴에게 정상 외교의 장을 마련해준 베트남 정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미 대사관 대변인은 "어느 나라도 푸틴에게 침략 전쟁을 선전할 장을 만들어줘선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잔학행위가 정상으로 보이게 허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면 노골적인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을 정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푸틴 국빈방문을 염두에 둔 듯 베트남은 지난주 스위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를 외면하는 대신에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신흥 경제국 모임) 외교장관 회의에는 외교 차관을 파견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베, 미‧일 비중 높이되 중, 러 관계도 견지
"소련‧러시아, 베트남 인민에 크나큰 도움"
뭣보다 푸틴의 방문이 베트남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 따른 것이란 점이 미국을 자극했다. 베트남 현지 '브이엔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3월 베트남의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이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방문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통화에서 쫑 서기장은 러시아와 그 이전의 소련이 베트남과 베트남 인민에게 주었던 크나큰 도움에 감사를 표하고 러시아와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최우선 외교 정책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지금까지 최상의 외교 관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를 맺은 나라는 중국, 인도, 러시아, 한국, 미국, 일본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급변하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현실을 반영해 한때 전쟁까지 벌인 한‧미‧일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면서도 전통적 우방인 중, 러와의 관계도 확고하게 견지하는 모양새다.
작년 9월 10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을 국빈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베트남을 "또 하나의 중대한 인도‧태평양 파트너"(9월 1일 하노이 기자회견)라고 극찬했다. 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데 꼭 필요한 나라 중 하나라는 판단에서였다.
바이든 '선물 보따리' 챙기고 할 말은 다 해
베트남 '4불 국방정책'…어느 편도 들지 않아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 구축을 위한 새로운 반도체 파트너십과 함께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희토류 공급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맺는 한편, 안보 협력 강화 차원에서 베트남에 890만 달러 상당의 군수 물자 지원 방안과 아울러 디지털 기술 플랫폼, 반도체 생태계, 인공지능(AI), 에너지 전환, 바이오테크, 헬스케어, 제약 등 첨단 과학기술, 혁신 분야에서의 협력과 같은 선물 보따리를 안긴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바이든 앞에서 할 말을 했다. 쫑 서기장은 "베트남의 일관된 외교 정책은 자주와 자립, 평화, 우호, 협력, 발전, 그리고 외교 관계의 다변화 및 다자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베트남은 '4불(不) 국방정책'을 견지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4불' 국방정책은 △군사동맹에 가담하지 않고 △어떤 나라를 반대하고자 다른 나라 편에 서지 않으며 △베트남 영토에 외국 군사기지를 두거나, 다른 나라에 맞서기 위한 베트남 이용을 거부하고 △ 국제관계에서 무력의 사용이나 위협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베트남을 반중국, 반러시아 진영으로 포섭하려던 바이든에겐 매우 실망스러운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미‧베 관계를 최상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자, 뒤이어 그해 11월 27일 당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도쿄를 찾아 일본과도 동일한 관계로 격상했다.
시진핑, 마르크시즘-호치민 소환하며 구애
베트남 "하나의 중국, 대만 독립 반대" 화답
베트남의 대미, 대일 관계 격상 조치는 물론 중국을 자극했다. 보름도 안 된 그해 12월 12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국빈방문해 쫑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양국이 민족의 독립과 해방 투쟁을 함께 하고, 마르크시즘을 옹호하며 사회주의 길에 헌신해온 '공동 운명체'임을 강조하면서 베트남의 마음을 사려고 애썼다. 또한 시진핑은 방문 기간에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 국가주석의 묘소를 참배하고, 중-베 청년 대표 모임에서 호 주석이 중국에서 12년간 혁명 활동을 했던 역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이에 쫑 서기장은 양국은 "동지이자 형제"라면서 "베트남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하게 지지하며, 대만을 중국 영토의 양도할 수 없는 일부로 인정하며, 중국 재통합이란 대의를 지지하며, 어떠한 형태의 '대만 독립' 분리주의 활동에도 확고히 반대한다"라고 시 주석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줬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교역국으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은 지 올해로 16년째다. 2022년 양국의 교역액 규모는 1756억 달러(약 229조 원)에 달했다.
당연히 베트남은 선물을 챙겼다. 양국은 외교, 경제 협력 등과 관련해 총 36개의 협정을 맺었다. 인프라와 투자, 교역, 금융·화폐, 식량 안보와 녹색 개발, 문화와 관광, 교육·스포츠·인력자원·과학기술 교류, 보건과 자연재해 예방 통제, 지방‧주민‧청소년 교류 등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서로 영유권 분쟁을 겪는 남중국해(베트남명 동해) 이슈와 관련해 "양국은 해상에서의 이견을 능동적으로 다루고 남중국해와 역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자는 데 합의했다.
베트남, 미‧일‧중 이어 대러 관계 다지기
"미‧일, 중‧러 사이에서 자주 실용 외교"
이 연장선에서 푸틴의 베트남 국빈방문이 이뤄지는 것이다. 미국(2023년 9월), 일본(11월) 중국(12월)에 이어 이번에 러시아가 그 대상이다. 베트남은 2008년 중국에 이어, 2012년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관계를 격상시켰다. 푸틴은 이틀간 하노이에 체류하면서 최근 새로 선출된 또 럼 베트남 국가주석, 쫑 서기장을 비롯한 고위 지도자들을 만난다. 로이터는 푸틴 국빈방문에 대해 "공산당이 통치하는 베트남의 러시아를 향한 충성을 잘 보여준다"라고 논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에선 무기와 에너지, 루블(러시아)-동(베트남) 결제 문제가 논의되고, 무역과 투자, 기술, 교육 관련 분야에서 합의가 예상된다. 자주성을 견지하면서도 미‧일과 중‧러 사이에서 국익 우선의 실용 외교를 펴나가는 베트남 외교의 진면목을 지켜볼 흔치 않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