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비공개 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하노이 | 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이 23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북·미 대화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추후 미국과 대화할 여지가 있다는 듯한 언급을 내놓았다. 북한이 차기 미 행정부와의 협상에 관심과 기대를 나타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미(북·미) 대결의 초침이 멎는가는 미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난 18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 발언을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북한을 두고 “나는 그들과 잘 지냈다”, “많은 핵무기나 다른 것을 가진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통신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미 관계 전망에 대한 미련을 부풀리고 있는데, 미국에서 어떤 행정부가 들어앉아도 양당 간의 엎치락뒤치락으로 난잡스러운 정치 풍토는 어디 갈 데 없다”라며 “따라서 우리는 그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통신은 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수뇌(정상)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 관계를 내세우면서, 국가 간 관계들에도 반영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실질적인 긍정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국가의 대외정책과 개인적 감정은 엄연히 갈라봐야 한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2019년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두차례 정상회담을 갖는 등 모두 세차례 만났다. 두번째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됐으나, 이후에도 북·미 정상은 친서를 주고받았다.

통신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화 및 협상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통신은 “지금처럼 핵전략자산을 때 없이 들이밀고 첨단 무장장비들을 증강하며, 핵작전 운용까지 예견한 빈번한 침략전쟁 시연회들을 광란적으로 벌리면서 그 무슨 대화요, 협상이요 하는 낱말들을 아무리 외웠댔자 우리가 믿을 수 있는가”라고 했다. 통신은 이어 “미국은 조·미 대결사의 득과 실에 대해 성근히(성실히) 고민해 보고, 앞으로 우리와 어떻게 상대하겠는가 하는 문제에서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을 좋을 것”이라며 “조·미 대결의 추침이 멎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트럼프 전 대통령 및 북·미 협상을 두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처럼 보이지만, 북·미 대화에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다는 속내가 담긴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국을 향해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 대화의 조건을 제시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북·미 관계는 미국의 행동에 달렸다며 미국이 “고민해 보고”,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힌 점도 대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은 ‘과거에는 미국을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미국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취지로, 북·미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의 핵전략자산과 핵작적 운용 등을 언급한 것은 북·미 협상의 의제가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이 돼야 한다는 뜻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많은 핵무기를 가진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는 발언도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어 북한 입장에서는 반길 수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핵을 인정하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떠오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북한이 핵군축 관련 협상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