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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되살리는 일본···“후쿠시마,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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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8-05 12:05 조회1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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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되살리는 일본···“후쿠시마,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


도쿄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지난달 23일 마쓰쿠보 CNIC 사무국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지난달 23일 마쓰쿠보 CNIC 사무국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福島)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말 뿐이다. 실제로는 후쿠시마를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나카노(中野)구에 위치한 일본의 대표적인 탈핵 시민단체인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사무실에서 만난 마쓰쿠보 하지메 CNIC 사무국장은 단호했다. 그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자문기구인 원자력위원회의 위원으로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에너지 전략에 반대한 인물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는 화석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GX)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확보를 위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린다는 게 GX의 골자다. 그 중 핵심은 원자력 복구다.

일본 국회는 현재 최장 60년까지 허용된 원자력발전소 수명을 늘리는 GX 전력공급법을 통과시켰다. GX 전략에 따라 폐로를 결정한 원전은 보수해 재가동하고, 원전 신설과 증설도 가능해졌다.

일본 원전 부활은 정부 주도하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위원회 위원으로 GX 정책 결정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정부(관료)가 정하면 위원회 위원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한 위원은 전체 23명 위원 가운데 마쓰쿠보 사무국장을 포함한 2명 뿐이었다.

일본 국민 원치 않은 원자력, 정부 주도로 부활

일본 국민은 원전을 원치 않았다. 일본 국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60%가 지금 당장 혹은 장기적으로 원전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전 되살리기를 택했다. 국민 공청회(의견교환회)를 몇 곳에서 열었는데 ‘후쿠시마’는 제외했다.

그는 “일본의 정책은 관료 손에 결정된다. 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구성원은 관료가 정한다. 의견 수렴을 거쳤다는 명분을 위해 만든 조직이어서 결론은 정해져 있다. 국민 여론은 반대였지만 원전이 선거에 영향을 줄 만큼의 이슈는 아니었기에 정부가 밀어붙였다”고 했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이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GX는 원자력을 통해 탈탄소를 이루겠다는 취지의 정책인데, 시간·비용 대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일본 정부는 원전 신설 계획을 2030년대 초반으로 잡았는데, 원전 건설 기간을 감안하면 2040년대에나 가동 된다”며 “탄소 절감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20년 후 효과를 기대하며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원전 수명 연장도 마찬가지다. “당초 40년 수명에 맞춰 설계된 원전을 ‘더 쓸 수 있을 거 같으니 더 쓰자’는 발상인데, 원전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가전 제품 취급하 듯 연장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기요금 인하 효과 미미···“탈탄소 지연”

원전의 전기요금 인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간사이·규슈전력 등 일부 전력회사는 원전 재가동으로 각 가정의 전기 요금이 한달 기준 약 1000엔 가량 내려갔다고 홍보한다. 그는 “원전 가동으로 모든 지역의 전기 요금이 내려가는 건 아니다. 시코쿠 전력은 원전 재가동을 했는데 인하 효과가 거의 없었고, 도쿄 전력의 경우에는 원전 재가동을 전제로 요금을 산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재가동이 되더라도 인하 효과는 월 100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유지비용까지 감안하면 원자력은 소비자에게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큰 에너지다. 2011~2022년 일본 전력회사에서 가동 중단 원전을 유지·관리하는데 투입된 비용만 13조엔이 넘는다. 원전 유지 비용은 전기요금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지난달 23일 마쓰쿠보 사무국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지난달 23일 마쓰쿠보 사무국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핵 폐기물 저장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그간 풀지 못 한 과제들은 그대로 남았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그간 13조엔 넘게 투자한 전력회사들은 원전 재가동을 전제로 전력 계획을 세웠는데, 가동을 하지 않게되면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정부도 여기에 편승해 원전의 근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억지 행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뜨겁게 달궜던 후쿠시마 오염수는 무관심 속에 조용히 방류되고 있다. 2016년부터 논의됐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당시 국민 공청회에서 거의 전원이 반대해 중단됐다가 시간이 흐른 뒤 폐기된 안건이 되살아나 결국 방류가 이뤄졌다.

핵 폐기물·사용후핵연료 문제 여전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일본 국민 여론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태평양 연안 나라들에 피해를 끼친 비윤리적인 행위”라며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낸 의견만 되풀이 인용하며 안심하라지만 10년 뒤 오염수로 인한 위험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7등급 대참사였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있다. 당장 폐로 절차를 밟기도 막막하다. 사고로 녹아내린 핵연료가 구조물과 엉키면서 생긴 핵찌꺼기인 ‘데브리’부터 제거해야 하는데 데브리는 여전히 원전 1~3호기 원자로 주변에 880톤(t)이나 남아있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데브리를 1~2g 단위로 빼내는 방안을 고민 중인데, 그렇게 해서 880톤을 언제 어떻게 빼낼 것인지 문제이고, 어디에 보관해 처리할 지도 문제”라며 “여기에 드는 비용만 최소 20조엔인데 부담 방안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했다.

반 히데유키 대표 별세…“고인 뜻 이어갈 것”

1975년 설립된 일본의 대표적인 탈원전 시민단체인 CNIC는 지난 6월 큰 부침을 겪었다. 일본 탈핵 운동을 이끌어온 환경운동가 반 히데유키(伴英宰) 대표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고 반 히데유키 대표는 일본 탈원전 운동의 리더이자 일본 정부와 대등하게 의견을 나누고 협상을 할 수 있는 창구였다”며 “정부와 신뢰관계가 있었던 분을 잃게 돼 애석하다”고 했다.

그는 “대표께서 떠나는 길에 두 가지를 당부했다. 사실에 기반한 의논을 하고, 대화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고인의 유지를 받아 탈핵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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