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유럽 뺀 미-러 종전협상, 한반도와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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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2-19 09:31 조회2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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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유럽 뺀 미-러 종전협상, 한반도와 닮은꼴
- 한승동 에디터
- 승인 2025.02.18 16:10
유럽 정상들 17일 비공식 긴급 대책회의
미 “우크라의 영토탈환과 나토 가입 불가능”
12일 미-러 정상 통화로 시작된 본격협상
러 쪽으로 기운 미-러의 우크라 종전 구상
‘중+러 vs 미국’ 구도서 ‘미+러 vs 중국’으로
한반도 닮은 우크라의 분할, 전쟁, 종전협상

17일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등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긴급 회동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소집한 이날의 비공식 회동 전에 마크롱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20여분간 통화했다.
유럽 17일 비공식 긴급 안보대책회의
회의의 주요 의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통칭)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파견, 유럽 각국의 방위비(군사비) 증액 문제 등이었다.
평화유지군 파견 문제에 대한 정상들의 의견은 갈렸으나 방위비 증액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다. 미국이 최대 GDP의 5%까지 올리라고 요구해 온 유럽의 방위비 증액과 관련해 올라프 숄츠 독일총리는 유럽연합(EU)의 방위비 증액 부분은 정부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EU ‘재정준칙’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다. 14~16일의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해 마치 차기 독일총리처럼 행세했다는 독일 기민련(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방위비 증액은 물론 마크롱이 제창한 유럽 독자적인 ‘유럽공동방위’ 구상에도 훨씬 더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일로 예정된 독일 총선에서 기민련이 제1당이 돼 차기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숄츠의 집권 사민당은 제3당으로 떨어지고,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2당으로 치고 올라올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트럼프 정권은 AfD를 적극 지지하면서, AfD를 위험한 ‘감시대상’ 극우집단으로 지목한 독일연방헌법수호청의 (이념적)‘방화벽’을 제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 상황에 대입하면 친일 인명사전을 폐기하고 항일독립운동사에 대한 교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AfD가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대상인 상황에서는 설사 AfD가 총선에서 선전한다고 해도 정부구성에 참여할 수 없다. 어느 정당도 그런 AfD를 연립정부 구성 협의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극우 AfD의 연립정부 구성 참여를 막고 있는 그 방화벽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없는 우크라이나 종전협상
이런 일련의 정상들 회동과 움직임들은 유럽이 어떤 다급한 상황에 처해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처지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화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방안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종전협상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없었다.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담당 특사 키스 켈로그는 15일 러시아와의 종전협상 테이블에 “유럽인들이 앉을 자리는 없다”고 했다. 그 하루 전인 14일 역시 그 안보회의에 참석했던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유럽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러시아)가 아니라 “유럽 내부”라며, 미국(트럼프 정권)과 다른 가치를 지닌 유럽의 (좌파적) ‘방화벽’ 등을 지적하면서, (좌파적) 유럽이 내부의 (극우적) 언론미디어와 정당들을 규제함으로써 사상과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막연했던 마크롱의 유럽공동방위 구상이 현실감을 띠기 시작하고, 서유럽과 미국의 이른바 ‘대서양 동맹’ 균열 얘기까지 나돌게 된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는 미국-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뿐만 아니라 극우세력이 정치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기에 이른 미국사회의 ‘변질’ 때문이다..

12일 트럼프-푸틴 통화로 본격화된 우크라이나 종전협상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초래한 수많은 죽음을 멈추게 하자는 생각에 일치했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발표한 뒤 종전 교섭이 급진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교섭 개시에 합의하자마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래트클리프 CIA(중앙정보국) 국장, 마이클 월츠 백악관 안보 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담당 특사,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을 총출동시키다시피 해서 교섭을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도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두 사람의 첫 대면 협상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뒤 두 나라는 18일 사우디에서 먼저 외교안보 참모들 회의를 열기로 했다. 미국은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클 월츠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을, 러시아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보좌관 등을 파견한다.
미국 “우크라이나의 영토탈환과 나토 가입 불가능”
미, 러 두 정상이 통화한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회의에 참석한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모든 영토를 되찾으려 하면 전쟁이 장기화되고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며, 그것은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단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트럼프는 헤그세스 장관의 말에 동의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실용적이지 않다”며,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에게 장차 희토류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 권익의 50%를 미국에 넘겨주는 것을 골자로 한 ‘광물자원에 관한 협정’을 제시하며 서명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지난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000억 달러(약 720조 원)에 상당하는 희토류를 원한다는 뜻을 (우크라이나 쪽에) 전달했고, 우크라이나는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 및 모터, 풍력 터빈을 포함한 광범위한 첨단 제품 제조에 필수적 리튬, 티타늄 및 기타 희토류 원소와 같은 중요한 광물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자원 제공을 먼저 제안한 것은 트럼프 정부의 지원에 기대야 하는 젤렌스키 쪽이었으나, 베센트가 제시한 광물자원 권익 50% 제공 제안을 젤렌스키는 거부했다. 거기에는 그 대가로 기대한 우크라이나 안전에 대한 분명한 보장방안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쪽으로 기운 미-러 우크라 종전 구상
러시아는 지금 자국군이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와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우크라이나 군대를 철수시킬 것,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의 퇴진을 종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점령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할 것과 서방의 지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침략자 러시아의 전쟁배상 등을 요구해 왔다.
지금까지 미국과 러시아 쪽에서 흘러나온 얘기들을 종합하면, 두 나라가 지금까지 그리고 있는 종전협상안의 골자는 러시아의 종전 조건을 수용하는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는 듯하다.
‘중+러 vs 미국’ 구도에서 ‘미+러 vs 중국’으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미국 러시아의 이런 종전협상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경악하고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전황이 러시아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최대 지원국이자 나토 주도국인 상황에서 그들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 이후 멀어지는 듯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뒤 다시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17일 엘리제궁 긴급회동에서 미국의 최근 탈유럽적 움직임을 “세대적 도전”으로 받아들이면서 영국군의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파견을 약속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의 안전보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한 것도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게다가 트럼프 2.0체제로의 정권교체 뒤의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빼거나, 지원 부담의 큰 부분을 유럽에게 떠넘기려 하는 정책 전환의 큰 고비를 맞고 있다.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엄청난 전략적 현실 때문에 미국은 유럽 안보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정권의 대러시아 접근정책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헤그세스의 발언은 중국과의 패권경쟁 내지 대중국 견제에 미국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제재에 힘을 쏟는 한편으로 중국 포위 내지 견제도 동시에 강화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손잡게 만들면서 미국 자신이 고립되는 불리한 전략구도를 만들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을 계기로 한 트럼프의 적극적인 대러시아 접근은 이 불리한 구도를 미국-러시아가 접근해서 중국을 집중 견제해 고립시키는 유리한 구도로 바꾸겠다는 전략적 사고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와 닮은 우크라의 분할과 전쟁, 종전협상
미국과 러시아가 지금 서두르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교섭(협상)은, 침략을 당한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또 다른 당사자인 유럽을 제쳐 놓고 최대 원조국인 미국이 전면에 나서서 침략국인 러시아와 직접교섭을 벌이는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적대적 진영간의 대리전적 성격을 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전쟁(6.25동란)과 닮은 점은 이처럼 종전 교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을 전후해 미국은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일방적으로 분할해 북쪽을 소련에게 넘겨 주었다. 당시 소련이 분할점령하자던 일본을 미국이 통째로 점령하기 위해 한반도 절반을 내어준 혐의가 짙다. 한반도 주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절대적인 원조국으로 개입해 돼 전쟁을 원점으로 되돌린 뒤 역시 주민들의 의사를 사실상 무시한 채 소련, 중국과 함께 그들의 냉전전략 구도에 맞춰 한반도를 다시 분할해 세력균형을 상호 보장해 주기로 합의했다.
70여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그 일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닮은 꼴로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협상 타결에 이르는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의 분단과 위기구조 또한 그만큼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