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신, 미국 연구소 방문 제약…연구 협력 위축 우려
외교부 “적극적 교섭 진행 중…해제에는 시간 필요할 듯”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한 조치가 15일 발효됐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민감국가 지정이 해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당분간 미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민감국가 분류 문제를 두고 “관계 부처와 함께 미국 에너지부와 국장급 실무협의 등 적극적인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민감국가 문제를 절차에 따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미는 국장급 실무협의를 가동한 상태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만 이 사안은 미국 측 내부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해제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감국가 지정은 미국시간으로 이날 자정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앞으로 한국 출신 연구자는 미국 연구소를 방문하기 최소 45일 전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한국을 방문하거나 접촉할 때도 추가 보안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미국 측이 민감국가 지정 배경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도 이날 “최근 양국 간 국장급 실무협의에서 미국 에너지부 측은 민감국가 지정이 현재 진행 중이거나 향후 추진하는 한·미 연구·개발(R&D)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절차상 제약이 실질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일 발간한 관련 보고서에서 “연구자 간 협력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협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미국 대학이나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가 한국 출신 유학생, 박사후연구원, 방문연구자 등을 선발할 때 민감국가 출신이라는 점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민감국가 지정 사유가 원자력 분야에 있다면 이 분야의 한·미 협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미국은 민감국가 목록 3개 등급 가운데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에 한국을 넣었다. 비확산과 테러 방지 등을 이유로 지정된 1·2등급 국가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국의 적성국과 함께 민감국가 목록에 올랐다는 점에서 타국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는 자체 핵무장론과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성 등이 이유로 거론돼왔다. 특히 민감국가 지정의 표면적인 이유는 보안 문제이지만, 기저에는 자체 핵무장론 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민감국가 문제를 한국과의 협상에서 일종의 카드로 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