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5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과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일본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당내 퇴진 요구에 시달려 왔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7일 오후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자민당은 지난해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를 선출한 지 불과 1년 만에 차기 당 총재 선거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재의 직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부터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을 마친 후 적절한 시기에 결단하겠다고 말해왔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총재인 나에게 있다고도 말씀드렸다”면서 “대미 관세 협상에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 지금이야말로 그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해 후임자에게 길을 양보하기로 결단했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8일 총재 선거 조기 실시에 관한 당내 찬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다. NHK는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정해 당내 혼란을 수습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내에선 조기 총재 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커지는 분위기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자체 조사 결과 당 소속 국회의원 140명, 광역지자체 격인 도도부현 연맹 대표 21명 등 총 161명이 조기 선거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진행한 같은 조사에서는 찬성 숫자가 128명이었는데 일주일 사이 33명이 늘어난 것이다.
자민당 당칙에 따르면 당 소속 의원 295명, 광역지자체 지부 대표 47명 등 총 342명 중 과반인 172명 이상 찬성하면 총재 선거 조기 개최가 가능하다.
지난 5일엔 스즈키 게이스케 법무상이 현 내각 각료 중 처음으로 조기 선거에 대해 찬성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전날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이시바 총리와 관저에서 만나 자발적 퇴진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조기 총재 선거가 실시될 경우 이시바 총리의 재출마를 막는 규정은 없지만 당내 퇴진 요구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재선 가능성은 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시바 총리 측 일부 인사가 최근 내각 지지율이 상승세인 것에 기대 중의원 해산 카드 등을 언급하기도 했으나 현실화되진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과반 달성에 실패하면서 책임론에 시달려 왔다. 참의원 선거 다음날부터 당내에서 퇴진 주장이 나왔으나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고물가 대책 추진 등 정책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이유로 유임 의사를 거듭 고수했다.
하지만 아소 다로 당 최고고문이 이끄는 아소파 등 파벌을 중심으로 조기 총재선거 주장이 확산했다. 여기에 지난 2일 양원 의원총회 이후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 등 당 4역이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당내 지지 기반이 취약한 이시바 총리로선 정권 운영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차기 자민당 총재 후보로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유력시된다. 극우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지난해 9월 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2위 이시바 총리와 함께 결선에 오른 바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 등이 출마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의석수가 의회 과반에 미달한 상황을 고려하면 누가 총재로 선출되든 의회의 총리 지명 투표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