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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고승우의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 세계 최장의 정전협정, 미국의 극동 군사전략에 이용돼 ① (2022.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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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5-30 09:18 조회1,1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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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장의 정전협정, 미국의 극동 군사전략에 이용돼 ①

  •  고승우
  •  
  •  승인 2022.05.26 00:00
 

[연재] 고승우의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1년’ (22)

6.25 한국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전을 위한 노력은 6·25 발발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1950년 12월 14일, 유엔은 정전을 위한 총회결의를 했고 이를 위해 중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과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1951년 6월 야콥 말리크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논의한 뒤 소련에서 먼저 협상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7월 1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공동으로 휴전협정 동의를 발표한 뒤 2년 가까이 휴전 협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다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59차 휴전회담 본회의에서 유엔군측 수석대표 W.K. 해리슨과 공산군측 대표 남일이 세 통의 휴전협정서와 부속문서에 각각 서명한 뒤 유엔군 총사령관 M.W. 클라크,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각각 후방사령부에서 서명했다.

휴전협정 1953년 7월 체결돼

협정서는 5조 63항으로 구성된 전문, 11조 26항의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문·영문·한문으로 작성되었다. 전문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분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한반도에서의 전투행위와 모든 무력행동을 완전히 종결시킬 정전을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휴전의 성격은 순전히 군사적인 것으로 6·25전쟁에서의 교전국에게만 해당되었다.

주요 내용은 ① 군사분계선을 설치하고, 양측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씩 후퇴하여 완충지대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② 군사정전위원회를 구성하여 휴전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며, 스웨덴·폴란드·스위스·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국으로 중립국감시위원단을 구성하여 군비증강을 감시·조사하게 한다. ③ 양측이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송환할 것과 본국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단에 인도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 협정으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2일 만에 휴전되었다.

한국전쟁, 6백여만 명의 인명피해 발생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면전 형태로 발생해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군이 개입하는 국제전으로 비화되어 엄청난 인명 피해 등이 발생했다. 3년 3개월간 지속된 한반도 전쟁에는 21개국이 전투병과 의료진을 보내 참전해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장이 되었으며, 대략 6백여만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남북한이나 미국, 중국 등의 집계가 서로 달라 혼란스런 가운데 남한의 인적 손실은 모두 230만여 명, 북한의 인적 손실은 292만여 명으로 추정됐다.

또한 1천만 명의 결핵환자,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인적 피해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때보다 피해가 더 컸다. 모든 도회지는 거의 파괴되었고 양측의 학살과 고문 기아로 인한 사망 등이 속출했다. 북한지역은 세계 전사에서 가장 많은 포격, 폭격을 당한 지역이 되었고 북쪽에서 피난민 7백만 명이 남쪽으로 넘어왔다.1)

참전국 군대의 인적 손실은 정확히 집계된 적이 없지만 한국군 75만 명 사상, 북한군 50만 명 사상, UN군 18만 명 사상, 중공군 95만 명 사상으로 추정됐다. 남북한 전역이 초토화되고 주요시설 파괴는 52%에 달했다. 남북한 전 지역에서 학교·교회·사찰·병원 및 민가를 비롯해 공장·도로·교량 등이 무수히 파괴되었다. 특히 민족 내부의 불신과 적대감이 커지면서 남북 간의 분단의 벽이 더욱 높고 견고해졌다.

미국은 정전협정이 맺어진 뒤에 평화협정 추진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한반도에 핵무기 등을 들여오는 등의 방식으로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는 극동 전략을 수행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계속하면서 북한의 핵무장 사태가 발생하는데도 제재와 봉쇄 작전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 군산과 오산을 대중국 타격할 전략 기지로 이용

2006년 4월 군산 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미공군 F- 16 전투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2006년 4월 군산 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미공군 F- 16 전투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미 극동사령부는 1956년 11월부터 남한의 의정부와 안양에 핵무기를 배치하거나 처리할 시설을 갖췄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미국이 남한에 핵무기를 최초로 들여온 것은 1958년 1월이고 그 이후 핵무기의 종류와 수량이 배치되면서 1960년대 후반에는 8가지 종류로 가장 많을 때는 950기에 달했다가 33년 만인 1991년에 완전 철수했다.2)

미국이 한국전쟁 정전이후 4년여 만에 남한에 들여온 핵무기는 오니스트 존 지대지 미사일, 크루즈 미사일, 핵 지뢰, 280mm 핵무기 발사 포와 8인치 곡사포 등이었다. 폭격기 탑재용 핵무기는 1958년 3월에 처음 들여왔다.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핵무기는 전략용과 지역용으로 구분되었다. 전략용 핵무기는 폭격기와 곡사포 등에 의해 목표를 타격하게 되어 있었으며 그 부대는 군산에 주둔한 미 제8전투비행단(제7공군 예하 전투비행단)이었다.

2005년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략용 핵무기는 미 제8전투비행단 소속 F-4D 팬텀기 4대가 활주로 끝에서 이를 탑재한 채 대기 상태를 유지하면서 미태평양공군 사령부의 지휘를 받았고 폭격 목표는 군산에서 390km 떨어진 중국이었다. 미 제8전투비행단은 비전략용 핵무기도 갖추고 있었고 북한 지역을 폭격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외곽에 포진되어 미 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았던 미 공군의 전략 핵무기 기지는 1974년 현재 군산 미 제8전투비행단과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와 필리핀의 클라크 미 공군기지였다.

1977년 남한의 핵무기는 군산과 오산 미군기지에 배치되었다. 오산 기지는 1977년 말에 폐쇄되고 그 후 남한 내 핵무기 배치 량은 계속 감소해서 1976년 540기에서 1985년에는 핵포탄과 핵폭탄을 합해 150기로 줄었다. 미 대통령이 전략무기 핵감축을 시도한 1991년 초에는 남한에 약 1백기의 핵무기가 남아있었지만 그 해 12월 모두 철수했다.3) 미국의 핵무기 철수 이후 남한 정부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남한에서 핵무기를 1991년 12월 완전 철수한 것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그 해 9월 제기한 군축 방안에 따른 조치였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해외의 육상과 함정에 배치했거나 공중 폭격용 원폭 등 모든 전술 핵무기를 미국 본토로 철수하면서 유럽 나토 회원국 절반에 배치해 놓은 공중 투한 원폭만 그 조치에서 예외로 했다.4)

군산에 주둔했던 미 공군은 1991년 1-6월까지 북한 타격용 핵무기를 비축했다가 그 후 철수한 사실이 확인됐다.5) 군산 미군기지의 미군 조종사들은 핵 폭격 훈련을 받았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핵 투하 자격 등을 인정받아야 했다. 당시 군산비행장에는 F-16 파이팅 팰컨 전투기가 주둔해 있었고 B61 핵폭탄을 장착하고 있었다. B61 핵폭탄은 미국의 전술·전략 양용 수소폭탄이었다.

미국 북한 핵 공격 계획 계속 발전시켜

최신 버전인 지하 관통형 핵폭탄 B61-11은 미국이 유사시 북한 지하시설을 공격용이었다. 군산비행장의 핵무기가 1991년 12월 철수하면서 북한에 대한 전술 핵 공격 임무는 미 본토의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시모어 존슨 공군기지 4 비행대 등이 담당하게 되었다.6)

1998년의 경우 시모어 존슨 공군기지에는 미국의 전천후 전폭기인 맥도넬 더글러스 F-15E 스트라이크 이글 16기가 주둔해 있었고 북한에 대한 핵공격 모의 훈련을 플로리다에서 모조 핵탄두를 투하하는 식으로 실시했다. 당시에 북한에 대한 전술 핵 공격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공격도 포함됐다.

이 훈련에 동원된 탄도유도탄 전략 잠수함(SSBNs) 2-3척은 태평양에서 항상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으면서 중국과 북한 지역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장거리 전략 폭격기 B-2도 북한 핵 공격 임무를 맡았으며 지하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지표를 뚫고 들어가는 B61-11 핵탄두를 탑재했다. B-2 스텔스 폭격기는 그 성능이 개발되어 1988년에는 25시간 걸렸지만 최근에는 8시간 안에 북한 핵 공격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남한에서 전술핵을 철수한 뒤에도 대북 핵 공격 계획은 계속 발전시켰다. 그것은 미 본토에서 폭격기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장거리 전략 폭격기 등 3가지 공격방식으로 추진됐다. 미국은 2001년 북한을 즉각적인 핵 공격을 가할 대상으로 삼은 것이 확인되었고 2003년에는 북한을 선제타격 대상으로 삼는 CONPLAN 8022 전략에 포함시켰다. 북한이 2006년 10월 핵실험을 실시한 뒤 미국의 대북 핵전략은 더욱 강화되었다.7)

미국은 작전계획 CONPLAN 5029를 보강해 재래식 무기로 북한의 핵무기를 선제 타격하는 작전을 포함시켰다.8) 작전계획 5029는 북한의 쿠데타, 혁명, 대규모 망명, 대량 탈북, 대량 살상 무기 유출, 북한 내의 한국인 인질 사태, 대규모 자연 재해 등이 발생한 경우에 대비해 만든 군사 작전 계획이다.

군산 미군기지, 중국 타격 동북아 최북단 전략기지

군산 미군 기지에 주둔한 제 8 비행대대는 기지 시설을 계속 개선해 2018년 격납고 건설 등을 완료했으며 2018년 2-3월에 무인기 MQ-1C 그레이 이글 12기를 항구적으로 배치할 것으로 보도되었다.9) MQ-1C 그레이 이글은 비행 거리 400km로 MQ-1 프레데터 무인기의 개량형 무인기이다.

주한미군은 2020년 최신형 무인기 MQ-9 리퍼 4기를 군산 미군기지에 잠정적으로 배치할 것이라는 국내 일간지 보도를 확인하는 것을 거절했는데 이 무인기는 비행거리가 1,850km에 달한다. MQ-9 리퍼는 2020년 1월 초 이란 군 사령관을 공격해 살해하는데 동원되었다.

주한미군은 2018년 2월부터 미 2사단에서 무인 공격기 MQ-1C 그레이 이글 12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도되었다. 무인 공격기 MQ-1C는 비행 거리 400km로 지대공 미사일과 장갑차 공격 미사일 4기를 장착하고 있으며 휴전선 넘어 북한 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10)

군산 미군 기지가 중국을 타격하는 동북아 최북단 전략기지가 되면서 중국의 그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중국은 미국이 군산 공군기지를 이용해 자국을 타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산 미군기지에서는 1958년 남한에 핵무기가 최초로 도입된 뒤 중국을 타격할 핵 탑재 폭격기가 활주로에 24시간 대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남한에서 반출된 뒤에는 재래식 무기가 중국 군사시설 타격용으로 대체되었다. 필리핀에 있던 클라크 공군기지가 1991년 폐쇄된 이후, 오산미군기지가 태평양지역에서 가장 큰 미 공군기지가 되어 미 태평양공군예하 제7공군사령부 본부가 자리잡았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2010년 현재 중국 외곽에 주둔한 미군기지 6곳 가운데 중국이 가장 경계하면서 유사시 타격할 무기를 가장 많이 배치해 겨냥한 지역은 한국의 군산과 오산 기지이다.11)

중국, 군산과 오산 미군기지 겨냥해 미사일 수백 기 배치

미 국방부가 작성한 중국군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사정권을 표시한 자료. 한국 대부분의 지역이 중국군 SRBM의 사정권안에 들어가 있다. SRBM은 사거리가 300km 이상 1,000km 이하로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미 국방부가 작성한 중국군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사정권을 표시한 자료. 한국 대부분의 지역이 중국군 SRBM의 사정권안에 들어가 있다. SRBM은 사거리가 300km 이상 1,000km 이하로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미 의회에 2010년 보고된 미중 군사경제관련 자료에 따르면 군산과 오산은 중국으로부터 약 4백km 떨어져 있어 유사시 중국인민해방군으로부터 탄도미사일 480기, 크루주 미사일 350기의 공격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이런 방어태세는 군산, 오산의 전략적 중요성이 일본에 있는 대중국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는 3개 미군기지 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두 기지가 중국에서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일본의 카데나 미군기지는 중국에서 650km 떨어져 있는데 이곳과 미사와 및 요코타 미군공군 기지에 대한 중국인민행방군의 방어태세는 탄도 미사일 80기, 크루주 미사일 350기로 미 의회 자료에 기재되어 있다.12) 오산과 군산을 겨냥하고 있는 탄도 미사일 수가 일본의 6배가 된다는 것은 중국이 군산, 오산 미군기지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미 의회 보고서는 중국의 화력이 유사시 군산과 오산 미군 기지를 타격할 경우 공군기와 기지 등이 파괴되어 전투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미 공군기지 부근 남한 주민들의 피해도 막중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렌스 지대지 미사일을 남한에 배치할 것을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가 지상 핵무기를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장소이며 괌 미군 지기에 배치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이유였다.13)

2021년부터 미중 두 나라가 대만을 무대로 군사적 힘겨루기를 강화하고 있고 미국은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이 즉각 투입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중 군사적 충돌 시 군산 지역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군산 미군기지가 미국의 전략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국제법적 근거 등에 대한 범사회적 검토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 등을 근거로 군산 미군 기지를 중국 타격 전략기지로 삼으면서 한국 민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규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성주 사드의 경우처럼 현지 주민들과 경찰이 계속 충돌하는데 미군은 뒷짐 지고 지켜보는 식의 비극은 이제 멈춰야 한다. 

 

주)

1) isher, Max (3 August 2015). "Americans have forgotten what we did to North Korea". Vox. Retrieved 18 October 2021./ Robinson, Michael E (2007). Korea's Twentieth-Century Odyssey. Honolulu, HI: University of Hawaii Press. pp. 119-120. ISBN 978-0824831745.

2)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history.htm

3)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history.htm

4) https://www.nukestrat.com/korea/withdrawal.htm

5)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planning.htm

6)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planning.htm

7)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planning.htm

8)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planning.htm

9) https://en.wikipedia.org/wiki/Kunsan_Air_Base

10) https://en.yna.co.kr/view/AEN20200106007900325

11) https://www.uscc.gov/sites/default/files/annual_reports/2010-Report-to-Congress.pdf

12) https://www.uscc.gov/sites/default/files/annual_reports/2010-Report-to-Congress.pdf

13) https://www.nukestrat.com/korea/koreahisto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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