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과 겨레말큰사전(2015.10.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19 14:31 조회4,288회관련링크
본문
[경향신문 조운찬의 들숨날숨]표준국어대사전과 겨레말큰사전
2015. 10. 9
“어떤 국어사전을 이용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이용하지요”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종이사전 이용자들은 어떤 사전을 즐겨볼까. 통계가 없어 정확히 말하긴 어려워도 민간 출판사들에서 발간한 중·소형 국어사전일 것이다. 신년 새 학기 때 팔리는 국어사전은 대부분 이들 작은 사전이다. 그렇다면 큰 사전 가운데 이용도가 가장 높은 것은? 아마도 <표준국어대사전>(전 3권)일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999년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했다. 정부가 정책연구기관을 앞세워 사전을 내놓자 민간의 사전 편찬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사이 정부의 권위에 기댄 <표준국어대사전>은 우리 말글생활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실제 언론·출판사의 어문규정은 물론 국립국어원의 어문 규범 제정, 가나다 상담 전화 등은 모두 이 사전을 준용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발행한 국어사전이 사전 시장을 평정하면서 민간의 사전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 때문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 ‘대사전’을 발간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나 기관은 없는 실정이다.
한 사전편찬자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발간은 국립국어원의 최대 실책”이라고 말한다. 정부 기관의 권위에 눌려 민간연구기관이나 출판사에서 사전편찬에 나서지 않으면서 경쟁을 통한 국어사전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돌이켜 보면 1956년 한글학회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 사전>을 계승한 <큰 사전>을 완간한 이후 1990년대까지 국어대사전 출간은 민간에서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국어대사전>(이희승 편), <새 우리말 큰사전>(신기철·신용철 편저), <금성판 국어대사전> 등 각기 특색 있는 대형 국어사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국어대사전 출간 붐은 사그라들었다. 21세기 들어 간행된 국어대사전은 2009년 나온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유일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국어생활의 ‘표준’이 된 <표준국어대사전>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초판이 발행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품절상태다. 그렇다고 개정판이 나온 것도 아니다. 당연히 시중 서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구입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웹사전으로만 사전을 증보, 수정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 한번도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은 발간하지 않았다. 예산이 없다는 게 이유다. 정부의 별도 지원이 없는 한 종이로 된 <표준국어대사전>은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 <고지엔(廣辭苑)>, <현대중국어사전(現代漢語詞典)>과 같은 일본과 중국의 대표 국어사전들이 5~6년을 주기로 개정판을 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5년 이후 남북은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사업은 언어 통일을 위해 남북이 최초로 힘을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교류 중단조치로 사전 편찬 목표 연도가 연기됐지만, 최근 험난한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편찬 사업은 순조로운 편이다. 남북한 어휘 약 33만개가 오를 <겨레말큰사전>은 2019년 사전 편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목표 연도에 종이로 된 두툼한 대사전의 출간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2019년의 기한은 종이사전 발간이 아니라 원고 집필이기 때문이다. 종이책으로 출간되려면 사업 기한을 연장하고 예산을 다시 편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준국어대사전>처럼 웹사전으로 끝날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이 나와야 하듯이, <겨레말큰사전>도 종이책으로 출간돼야 한다. 그 사전을 남북의 학교, 도서관, 언론사에 비치해 남측, 북측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어휘나 언어생활을 비교하며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글의 역사는 근 600년을 헤아린다. 장구한 역사만큼 생성되고 소멸된 우리말도 무궁무진하다. 큰 사전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어휘가 부족하지도 않고, 용례가 적지도 않다. 우리라고 해서 일본 국어대사전(20권), 중국어대사전(24권), 옥스퍼드 영어사전(20권), 그림형제 독일어사전(100권) 등과 같은 거질의 국어사전을 내지 못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을 가꾸고 사용해야 한다는 의지이다. 우리말을 쉽게 익히고 편하게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을 보는 일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어제 서문에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새겨야 할 한글 창제자의 유훈이다.
<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표준국어대사전>은 1999년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했다. 정부가 정책연구기관을 앞세워 사전을 내놓자 민간의 사전 편찬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사이 정부의 권위에 기댄 <표준국어대사전>은 우리 말글생활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실제 언론·출판사의 어문규정은 물론 국립국어원의 어문 규범 제정, 가나다 상담 전화 등은 모두 이 사전을 준용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발행한 국어사전이 사전 시장을 평정하면서 민간의 사전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 때문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 ‘대사전’을 발간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나 기관은 없는 실정이다.
한 사전편찬자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발간은 국립국어원의 최대 실책”이라고 말한다. 정부 기관의 권위에 눌려 민간연구기관이나 출판사에서 사전편찬에 나서지 않으면서 경쟁을 통한 국어사전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돌이켜 보면 1956년 한글학회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 사전>을 계승한 <큰 사전>을 완간한 이후 1990년대까지 국어대사전 출간은 민간에서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국어대사전>(이희승 편), <새 우리말 큰사전>(신기철·신용철 편저), <금성판 국어대사전> 등 각기 특색 있는 대형 국어사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국어대사전 출간 붐은 사그라들었다. 21세기 들어 간행된 국어대사전은 2009년 나온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유일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국어생활의 ‘표준’이 된 <표준국어대사전>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초판이 발행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품절상태다. 그렇다고 개정판이 나온 것도 아니다. 당연히 시중 서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구입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웹사전으로만 사전을 증보, 수정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 한번도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은 발간하지 않았다. 예산이 없다는 게 이유다. 정부의 별도 지원이 없는 한 종이로 된 <표준국어대사전>은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 <고지엔(廣辭苑)>, <현대중국어사전(現代漢語詞典)>과 같은 일본과 중국의 대표 국어사전들이 5~6년을 주기로 개정판을 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5년 이후 남북은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사업은 언어 통일을 위해 남북이 최초로 힘을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교류 중단조치로 사전 편찬 목표 연도가 연기됐지만, 최근 험난한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편찬 사업은 순조로운 편이다. 남북한 어휘 약 33만개가 오를 <겨레말큰사전>은 2019년 사전 편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목표 연도에 종이로 된 두툼한 대사전의 출간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2019년의 기한은 종이사전 발간이 아니라 원고 집필이기 때문이다. 종이책으로 출간되려면 사업 기한을 연장하고 예산을 다시 편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준국어대사전>처럼 웹사전으로 끝날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이 나와야 하듯이, <겨레말큰사전>도 종이책으로 출간돼야 한다. 그 사전을 남북의 학교, 도서관, 언론사에 비치해 남측, 북측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어휘나 언어생활을 비교하며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글의 역사는 근 600년을 헤아린다. 장구한 역사만큼 생성되고 소멸된 우리말도 무궁무진하다. 큰 사전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어휘가 부족하지도 않고, 용례가 적지도 않다. 우리라고 해서 일본 국어대사전(20권), 중국어대사전(24권), 옥스퍼드 영어사전(20권), 그림형제 독일어사전(100권) 등과 같은 거질의 국어사전을 내지 못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을 가꾸고 사용해야 한다는 의지이다. 우리말을 쉽게 익히고 편하게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을 보는 일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어제 서문에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새겨야 할 한글 창제자의 유훈이다.
<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