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하노이에서 판문점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평가와 전망 (201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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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판문점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평가와 전망
2019-0701 조한범 (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1. 하노이 이후 김정은 위원장 행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충격 이후 잠행 모드에 들어간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비핵화 협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주요 내용은 비핵화 협상시한을 연말까지로 정하고 더 이상 제재해제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으로 나와야 대화를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라는 표현을 통해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공동선언에 명기한 영변 핵폐기가 하노이에서 통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개연성이 있다.
하노이 이후 5차 방중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예상을 깨고 김 위원장은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북러 정상회담 후 양국 공동성명이나 특기할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 역할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북러 정상회담은 하노이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카드로서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은 4차례의 방중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뚜렷한 지원이나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협력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월 4일과 9일 김 위원장은 북한군의 단거리 발사체와 미사일 발사를 직접 참관함으로써 미국에 대해 무력시위를 했다. 북한은 사거리를 단거리로 제한함으로써 대미 압박과 함께 레드 라인은 넘지 않는 신중함을 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시위를 ‘작은 무기’로 표현함으로써 사안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하고 있는 유엔 역시 단거리의 경우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5월 말 김 위원장은 북한의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를 집중 시찰함으로써 대미 압박 행보를 이어갔다.
국면 반전은 북미 정상 간 친서외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 전날인 11일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6월 23일 북한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왔으며, 김 위원장이 만족해했고 흥미로운 내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시진핑 주석의 첫 번째 방북은 6월 20∼21일 이틀간 이루어져 양국 간 협력관계를 과시했지만, 북중 5차 정상회담은 북한보다는 미중 무역분쟁과 홍콩사태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시 주석의 필요성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행보를 볼 때 하노이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기존의 비핵화 협상 전략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노이 이후 북한의 대미라인의 무게중심은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옮겨가는 징후를 보였는데,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비롯해 협상 주역들이 약진 또는 건재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북한의 대남 대미 비난 역시 협상 국면의 파기를 의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주요 비난 대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참모와 실무진이며, 남한에 대해서도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가져가고 있지 않은데 대한 불만이다. 북미 협상에 남한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6월 27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의 발언 역시 1,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당시 우리 정부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근거가 희박하다. 오히려 북미 협상에 있어 북한의 편을 들어달라는 불만의 우회적 표시로 볼 수 있다.
2.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평가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최초의 일이며, 이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함으로써 사상 첫 남북미 정상 간 회동도 성사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정상회담은 북미 간 화해를 의미하며, 상징적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당면 현안인 북핵 문제의 출발점도 북미 불신과 적대관계라는 점에서 군사적 대치의 현장인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 간의 만남은 양국 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의 집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단독 회담시간은 53분으로 3차 북미 정상회담에 해당하며, 비핵화 협상의 청신호로 볼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미협상에서 구체적인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에 초청함으로써 추가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길을 열어놓았다.
셋째,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있어 한국정부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사상 첫 남북미 정상 간의 판문점 회동이 성사되었으며, 북미 회담이 우리 측 자유의 집에서 열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전과 경호 등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의 복잡한 문제들이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축적된 한국의 노하우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북미 양자협상+한국정부의 역할’ 구도가 다시 한 번 확인된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남북 정상 간 회동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으로써 그 동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북한의 대남태도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은 전날 오전 오사카의 트윗에서 시작해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5시간만의 긍정적 답변 등 매우 짧은 시간에 전광석화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의 이목을 자신과 한반도에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전날 종료된 G20회의나 미중관계, 미국 내 차기 대선 민주당 경선 등 많은 이슈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에 가려졌다. 컨벤션 효과라는 점에서 대선 캠페인 국면으로 접어든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와 실무적인 문제의 복합성을 고려했을 때 판문점에서 준비되지 않은 북미 정상의 짧은 만남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북미 양측의 협상의지가 아니라 비핵화 방식에 대한 입장차라는 점에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결정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이전 북미 간 의미 있는 실무협상이나 고위급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판문점에서의 상징적인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회동을 통해 비핵화협상에 대한 탑다운 방식의 동력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3. 북미 비핵화 입장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비핵화협상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계기였다. 문제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부터 출발한다. 미국이 탈퇴한 이란 핵합의(JCPOA, 포괄적 행동계획)의 경우 매우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경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라는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은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규정과 이행을 위한 구체적 합의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실무협상에서의 난관을 예고한 것이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측의 해명을 종합할 경우 북한은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사찰 및 검증, 영구폐기를 제안하는 대가로 대북제재의 일부 해제를 요구했으며, 미국은 영변+α를 요구해 합의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요약된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의 핵연료주기와 핵물질 생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해제를 요구한 5건의 유엔 대북제재는 사실상 대북제재의 전부에 해당하며, 미국의 입장에서 영변은 과거에도 북한이 폐기에 합의했던 대상일 뿐이다. 또한 영변 이외의 지역에도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시설이 존재할 개연성이 있으며, 이미 생산된 핵물질,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존재한다는 점은 미국의 부담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모든 북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이 전제되지 않은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북미의 견해차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이 결정적인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비핵화의 복잡하고도 기술적 차원의 이견이 실무선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탑다운 방식의 동력 제공만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입증되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비핵화의 ‘새로운 셈법’ 을 위한 제언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이후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