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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연재]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한미동맹 현안 점검(11)<끝>-한국내 한미동맹 접근 방식, 미국식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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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4-14 15:45 조회2,2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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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내 한미동맹 접근 방식, 미국식 법치주의와 엇박자?
  •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승인 2021.02.22 11:41

[연재]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한미동맹 현안 점검 (11)-끝

한미동맹 비판 대상은 SOFA, SMA가 아닌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약은 국가 간에 맺는 관계 중에 가장 무겁고 높은 위치에 있는 규정이다. 협정이나 양해각서(MOU)는 조약보다 강제성이 약하다. 한미동맹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계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운데 4조는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을 권리(right)로 규정하고 있어 한국이 국제적으로 그 위상이 왜소하게 보이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만들고 있다.

4조에서 파생된 하위법체계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미국의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는 형식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시설, 구역, 미군 주둔비 일부를 한국이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미국이 원하는 미군 군사력을 한국에 배비하는 결과를 초래해 주권국의 군사적 자주권 문제, 국토의 효율적 이용 문제를 초래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초래 등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위태롭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4조(Article 4)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Article 4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

한미상호방위조약 4에서 미국이 누리는 권리(right)의 법률적 의미는, 어떤 일을 원하는 대로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을 말하고 grant와 accept는 무상으로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할 때 갑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자격이 이 조항에서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 4조의 첫 부분 ‘상호합의에 의하여’는 SOFA에 의한 합의를 가리킨다. 소파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방위비분담협정(SMA)은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를 담았다. SOFA가 원래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미국이 부담하게 만들어졌는데도 SOFA 5조의 예외적 협정을 별도로 만들어 한국에게 부담 의무를 떠넘긴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예외 조항이 만들어진 것도 미국의 권리(right)가 한국에서 보장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주한미군에 부여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적 편리를 제공한다. 당연히 미국은 한국에서 슈퍼 갑에 걸 맞는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의한 저질러진 환경오염 등에 대한 합당한 의무조차 지지 않는다.

▲ 2016년 11월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승배 외교부 북미국장(오른쪽)과 토머스 버거슨 주한미군 부사령관(왼쪽)이 각각 위원장으로 참석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제197차 회의를 열고 주한미군 기지 환경 문제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이날 회의에 앞서 양국 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6년 11월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승배 외교부 북미국장(오른쪽)과 토머스 버거슨 주한미군 부사령관(왼쪽)이 각각 위원장으로 참석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제197차 회의를 열고 주한미군 기지 환경 문제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이날 회의에 앞서 양국 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은 1966년 환경 관련 규정이 전무한 SOFA을 맺은 뒤 지금껏 명확한 환경오염 정화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고 미군은 단 한 차례도 기지 안 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에 나선 적이 없다(수원시민신문 2017년 7월17일). SOFA의 양해각서인 환경조항에는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한다’고만 돼 있어 주한미군에 오염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JTBC 2017년 7월11일).

미군이 사용하다 한국에 반환한 부대 부지에서 발생한 오염문제 사례를 살펴보면 한미간의 불평등한 현실이 그대로 들어난다.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주변 오염이 근처의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출됐다며, 법원이 2007년 18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을 때 그 배상금 전액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특별법에 따라 미국이 아닌 한국 정부가 서울시에 지급했다(JTBC 2014년 1월18일). 국민의 혈세가 미군기지 오염 제거 등에 지출된 것이다.

한미동맹은 이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뿌리로 삼아 SOFA, SMA 등이 하위법으로 만들어져 실행되고 있다. SOFA, SMA가 한국의 입장에서 불평등한 것은 두 협정의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불평등한 것은 미국에게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미국은 그 특권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보장되어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SOFA, SMA에 의한 특권도 당연한 미국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미국식 법치주의에 비춰볼 때 하자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에게 ‘권리’를 부여한 것은 한미 두 나라의 합의사항이고 그 ‘권리’는 SOFA, SMA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 일각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아닌 SOFA, SMA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법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럼 점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의 비판이나 시정 요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표적으로 삼아야지 그 하위법인  SOFA, SMA만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법치주의 방어에 막혀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한미동맹에서 들어난 문제점,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동맹, 그리고 미국의 법치주의 특성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외교부가 밝힌 미군기지 환경오염 소송 방침 실효성 있나

현행 한미동맹과 관련해서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은 지난 해 12월18일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반환된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책임 문제를 두고 한미 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며, 환경 치유 비용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국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힌 데서도 드러났다.

최 차관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일부를 포함해 반환받는 12개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정화 비용과 관련해 “미국에 환경 치유 비용에 대한 소송을 포함한 요구를 할 것”이라며 “협의가 안 될 경우 소송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한국일보 2020년 12월18일).

최 제1차관의 위와 같은 발언은 한국정부가 미국과 201차 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11개의 미군기지와 용산기지 2개 구역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직후에 나왔다. 한미 두 나라는 미군기지 부지의 환경오염 책임을 두고 어느 쪽이 담당할지 협의했지만 미국은 오염 정화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제1차관의 말처럼 미국에 소송을 제기했을 때 승소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인데 이는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취해온 ‘나 몰라라’하는 태도의 근거가 되고 있는 현행 한미동맹이 존속하는 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최 제1차관이 미군기지 환경오염을 둘러싼 국내 소송에서도 중앙정부가 서울시에 배상금을 미군대신 지급한 것을 언급치 않은 것이나 언론도 그에 대해 침묵한 것은 그냥 보아 넘길 일은 아닌 듯하다.

▲ 정부는 지난해 12월11일 미국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화상으로 열고 서울과 경기 일부, 대구 남구, 경북 포항, 강원 태백 등에 있는 미군기지 12곳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환받은 부지는 보안 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마친 뒤 사용할 예정이며 나머지 구역들도 용산공원 조성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순차적인 반환을 미측과 협의할 방침이라고 정부는 전했다. 또 용산의 캠프 킴(5만㎡), 8군 종교휴양소(2만㎡), 한남 외국인아파트 거주자 지원시설인 니블로배럭스(3만㎡), 서빙고부지(5천㎡)와 중구의 극동공병단(5만㎡) 등도 돌려받는다. 사진은 11일 서울 중구 극동공병단. ⓒ 연합뉴스
▲ 정부는 지난해 12월11일 미국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화상으로 열고 서울과 경기 일부, 대구 남구, 경북 포항, 강원 태백 등에 있는 미군기지 12곳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환받은 부지는 보안 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마친 뒤 사용할 예정이며 나머지 구역들도 용산공원 조성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순차적인 반환을 미측과 협의할 방침이라고 정부는 전했다. 또 용산의 캠프 킴(5만㎡), 8군 종교휴양소(2만㎡), 한남 외국인아파트 거주자 지원시설인 니블로배럭스(3만㎡), 서빙고부지(5천㎡)와 중구의 극동공병단(5만㎡) 등도 돌려받는다. 사진은 11일 서울 중구 극동공병단. ⓒ 연합뉴스

논란이 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국 배치도 사실 미국이 이 조약 4조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었고 한국은 ‘허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한미 간에 사드의 배치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기만적 언사에 불과했다. 남한이 경북 성주에 배치되는 사드에 대해 SOFA에 규정된 환경영향평가를 내세웠으나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권리’가 잘 집행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는 제한적인 취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주한미군 부대시설에 대해 환경을 문제 삼아 제공하지 않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비 부담을 500% 인상한다고 말한 것도 깡패가 위협한 것이라기보다 부동산 재벌의 상식으로 볼 때 ‘미국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치에 맞는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1950년대 말부터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하는 등 맘먹은 무기는 다 남한에 들여왔다 빼가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미군이 2017년 상반기에 군산비행장에 배치한 무인폭격기나, 얼마 전까지 한반도 상공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북한을 정탐한 미군의 최첨단 정찰기 등이 그런 사례의 일부다. 이 조약이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사드 배치 사태는 불가피하고 미국의 대북선제공격 전략은 언제나 사용 가능한 카드가 된다 할 것이다. 또한 미군기지 오염에 대해서도 한국이 미국에 그 원상회복 등을 요구할 근거를 갖지 못할 것이 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이후 미국 핵무기나 사드 등 미국의 군사력을 한국 배치할 때 미국이 실효적인 사전 협의를 한국 정부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이 조약으로 주한미군은 미국이 원하는 무기를 한국에 들여올 때 권리를 행사하는 식이고, 본토에서 주둔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으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 평택미군기지가 세계 최고인 것도 이 조약에 근거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행정부나 의회에서 한미동맹을 최상의 동맹으로 추켜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들어선 뒤에도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이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미국 전문가들은 한미간에 동맹 관련 이견이 커지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내놓는다. 그것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남아 있지 말고 미국 편을 들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에게 의존하거나 종속된 상태인 반면 경제적으로 대중국 의존도가 커지고 있어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 되고 있다.

오늘날 동북아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한국이 당하는 고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 부근 등에서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군사적 힘겨루기를 계속하면서 신냉전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 묵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유지할 경우 한국이 강대국의 패권싸움에 휘말리거나 평화통일의 꿈을 접어야 할 지경에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향후 한국의 선택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더욱 공고히 하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정밀한 시시비비는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퍼주기 식으로 동의한 한미상호방위조약, 21세기엔 부적절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전쟁직후인 1953년 10월1일 워싱턴에서 맺어진 뒤 1년 후 발효되었으며 전문과 6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약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후 만들어진 것으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퍼주는 식으로 동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이 슈퍼 갑이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미군이 남한에서 원하는 곳 어디에든 미 군사력을 배치할 수 있다. 이 조약의 포괄범위는 한반도를 넘어 태평양지역으로 되어 있는 탓인지 미 본토의 미군까지 주한미군에 순환배치 되고 있다.

또한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고 단지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이 폐기되지 않는 한 미국은 군사적 종주국처럼 행세하는 미군을 한국에 무기한 주둔시킬 수 있다. 이 조약을 바탕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사령관 등 3개의 모자를 쓰고 있고 미국은 한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국제연합의 토의와 결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개입할 수 있고 사후에 보고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미국이 대북 전면전 가능성을 대북 협상이나 정책의 한 카드로 비축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한미동맹이 그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기나라 땅도 아닌 한국에서 북한에 대해 전면전을 벌일 수 있다는 식으로 공언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는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전략을 집행하기 위해서 북한이 미국을 위태롭게 만들 긴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미 의회에 입증해야 하는데 그 증거자료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최첨단 정찰기를 한국에 수시로 파견하거나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공격 확정시 그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비축, 30~40만 명에 달하는 미군사력 주둔, 해군력의 배치와 그 발진기지 등이 필요한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이런 것들이 보장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의 북미관계를 보면 미국이 휘두르는 대북 전면전 카드가 지닌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고 보여 진다. 미국이 대북협상에서 극단적인 물리적 방법인 전쟁위협까지 선택지에 포함시킨 결과 협상의 실패 또는 결렬을 유발하는 측면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대북 선제공격이라는 협상 카드가 없을 경우 미국의 대북 협상 태도는 좀 더 진지하고 신중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21세기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안정에 맞게 어떤 형식으로 든 그 폐기까지 포함해서 수정되어야 한다. 미중패권 경쟁으로 동북아에 신냉전 도래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활용할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을 한국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그 비판에 귀를 막고 언론과 진보정당도 침묵하는 한미동맹

미국이 한국에서 누리는 군사적 특권에 대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SOFA 개정 등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귀를 막고 있는 형국이다. 왜 그럴까.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한 미국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등을 미군이 부담하는 것에 대해 법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권리를 한국에서 행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토양오염에 대해 미국이 원상회복 등의 의무를 지게 될 경우 4조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 아니냐 하는 법리를 주장하고 있고 한국이 그에 대응하는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껏 미군기지 환경오염에 대해 한 푼도 부담한 사례가 없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국민에게 그 실상을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미국이 부당하다, 염치가 없다는 식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내 언론, 정치권 등에서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사례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조약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새롭게 고치거나 폐기하자는 말을 하는데 극도로 신중을 기한다. 정치권을 보면 현재의 거대 양당은 물론 진보를 내세우는 정당에서도 이 조약을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로 삼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칭 진보를 내세우는 곳에서도 이 조약을 다루는 것은 꺼려한다. 내로라하는 학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통일운동에 관심이 있는 인사 가운데는 이 조약 4조의 부속협정인 SOFA를 이 조약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흔할 정도다.

정치권이야 미국 눈치를 보니까 그럴 것이라 하지만 언론조차 침묵하는 것은 심각하다. 언론은 세계 주요 지역에 특파원을 내보내고 있거나 외국 언론의 기사를 상시적으로 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국의 군사동맹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미중 두 나라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등 세계정세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서 1950년대에 만들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21세기 동북아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남북한 평화통일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언론이 정확히 알리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한미동맹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는 다른 나라들의 군사동맹과 비교만 해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고민이 필요할 때다. 정치권과 언론 등의 한미상호방위조약 대한 침묵에 대해 혹자는 이 조약이 헌법의 수준에 속하는 것이며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아니냐 하는 논리를 편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지만 이런 식의 기피현상은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은 과거의 경우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동맹, 한미동맹과는 하늘과 땅 차이

한미군사동맹이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가 하는 점은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동맹과 비교해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필리핀은 1898~1946년까지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다. 필리핀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1951년 체결해 외부의 침략을 받을 경우 서로의 영토를 지키는데 합의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 내 몇 곳에 미군 기지를 유지했는데 필리핀 의회가 1992년 클라크 미군기지 유지 연장을 불허하는 결정을 하면서 미군이 철수했다. 당시 필리핀 의회는 미군기지 유지 시한을 정하고 핵무기 반입을 불가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두 나라는 1998년에 방문군 협정(VFA)에 합의해 상호동등한 입장에서 자국 군대의 상대국 방문 규정 등을 성문화했다.

그 후 두 나라는 VFA에 의해 연례 군사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작전의 범위가 동남아 주변까지 확대되면서 필리핀에서 미국의 계속 주둔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태풍 발생 등올 재난 구호와 위기 대응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필리핀과 미국은 2014년 방위협력강화협정(ECDA)을 체결했다. ECDA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에 영구적인 군 주재나 군사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핵무기의 필리핀 진입은 금지된다. 미군은 이 협정에 따라 필리핀 정부의 초청을 받고 필리핀군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 지역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협정은 두 나라가 태평양지역에서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두 나라 외무장관이 이 조약의 적용문제 등을 협의한다. 무력을 동원한 공격 등이 두 나라에 의해 취해졌을 경우 이를 유엔 안보리에 즉각 보고한다. 이 협정은 10년이 시한이며 어느 한 쪽이 종료의 의사를 통보한 뒤 1년이 지난 뒤 폐기될 때까지 유효하다.

필리핀은 지난해 2월 미국에 일방적으로 VFA 종료를 통보해 180일간의 경과 기간이 끝나는 8월에 이 협정이 공식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6월 종료 절차를 6개월간 중단한다고 통보한 뒤 최근 또다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초기인 2021년 상반기까지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연합뉴스2020년 11월11일). 필리핀의 VFA 종료 통보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한 전 경찰청장의 미국 비자가 취소된 것에 대한 반발에서 이뤄졌는데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 정부 출범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협정 내용은 https://en.wikipedia.org/wiki/Enhanced_Defense_Cooperation_Agreement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식 법치주의의 근간, 흑인 노예해방과 총기 소유 허용에서 드러나

한미동맹을 정상화시킬 방안은 그 폐지에서부터, 필리핀 수준으로 정상화시키는 등 다양할 것이고 그것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한미동맹에 접근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그것은 미국이 법리를 앞세워 외면하거나 변명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이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도저히 거부할  없는 확실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하고 특히 미국식 법치주의의 핵심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 미국식 법치주의 특성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대통령제, 연방체제 도입과 흑인노예 해방, 총기소유권리 보장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건국 당시 세계 최초로 실시한 미국 대통령제는 트럼프의 경우에서 확인되듯이 대통령은 그 임기 중에는 강력한 면책 특권, 사면권 등이 보장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2일 이란 권력 2인자이자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 가셈솔레이마니 암살을 명령한 것(2020년 1월2일 외신 종합)처럼 미국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외국에 대한 선제 공격권 또한 보장될 것이다.

미국 연방체제의 특성을 보면, 주정부의 자율권이나 시민들의 자기보호권 등을 상당부분 보장하기 때문에 주마다 동일 사안에 대해 법이 차이가 있는 것이 허용되고 시민들은 최후의 자기 보후 수단으로 총기소유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 2조는 미국 시민의 총기 소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이는 연방정부가 주 정부에 군사력 사용과 같은 부당한 물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취지다. 정치권력이 항상 정의로울 수는 없고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보완조치,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한 시민 개개인의 무장이라는 대체 방안을 강구해 놓은 것이다.

지난달 6일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인증하기 위한 117차 미국 의회가 개회되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 인증을 저지하고 패배를 번복하기 위해 의사당에 난입해 폭동 및 폭력 행위를 일으키면서 다량의 총기와 폭발물을 소지하거나 은닉한 것으로 밝혀져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에서 탄핵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연합뉴스 2021년 1월7일). 이 사건 이후에도 총기소유 제한 등에 대한 여론이 높지 않은 이유도 수정 헌법 2조 때문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미국은 미국식 정치제도의 유지를 위해 법치를 우선시 하면서 헌법을 최고의 법규로 보고 헌법을 존중한다. 미국은 외교에서도 상위법과 하위법을 구분해 보고 있다. 한미동맹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최상의 법규이고 SOFA, SMA 등은 그 하위법규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환경오염문제나 사드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4조 등을 앞세워 방어하면서 미국이 항상 갑의 위치를 누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헌법과 하위법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확인시킨 경우가 링컨 대통령이 시도한 흑인노예 해방이다. 이 사례는 인권, 윤리, 법적 문제가 혼재된 문제로 어떤 법적 절차에 따라 정상화시켰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경우로 좀 길게 소개하기로 한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도가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확신했지만 헌법이 그 폐지를 막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철저히 법치에 의해 노예해방을 주도했다. 그는  노예제도에 대해 법 대로를 가장 먼저 앞세우면서 입법과 개헌을 통해 흑인노예 해방을 시도했다. 링컨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견해를 거기에 맞게 수정했다. 예를 들면 1861년 대통령에 처음 당선 뒤, 오늘날 파나마에 흑인 식민지를 건설해 흑인 노예를 그곳에서 거주하게 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흑인노예는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은 미국 헌법이 정한 것이다. 흑인 1명은 백인 0.6명에 해당할 뿐이다”라는 논리로 시행중인 미국의 선거법 내용에 따른 것이었고  1787년 개정된 미 헌법에 부합하는 것이었다(https://www.history.com/topics/american-civil-war/emancipation-proclamation).

당시 미 헌법은 연방의회 소속 하원의원 숫자를 주 별로 산출할 때 흑인 한 사람은 백인의 3/5에 해당하는 식으로 계산토록 했었다. 링컨은 미국 헌법이 노예가 존재하는 주에 노예제도를 폐지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흑인에 대한 생각은 남북전쟁이 발생하면서 개선되었는데 흑인노예해방도 법이 먼저 만들어진 뒤 실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철저히 지켰다.

링컨은 1861년 북군의 한 장성이 미주리 주에 계엄령을 내리고 ‘남부군 동조자들의 재산은 압류하고 그들이 소유한 노예는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하자 황급히 그 장성의 조치를 철회토록 조치하고 그 장성도 해임시키기도 했다. 링컨은 18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노예제를 폐지하자는 개헌을 요구했다. 

“개헌은  전쟁을 종결짓는 필요한 조치이다”

링컨과 의회는 노예제 폐지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뒤 1865년 4월11일 재선 대통령이 되어 흑인의 투표권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하는 식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다. 1865년 1월 미 의회는 링컨이 암살당하기 3개월 전 13번 째 개헌을 통해 노예제 폐지를 법제화했고 개헌안은 그 해 연말에 비준되었다.  흑인에게 투표권은 1870년 15차 개헌이 이뤄진 뒤 보장되었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에서 보듯 미국의 법치주의는 나름 철저한 면이 있다. 치열한 법리논의를 거치되 상위법이 하위법에 반드시 우선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동시에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 대비하고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미국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 등 3개 군사조직의 수장을 맡고 있는 것에서도 들어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그물망을 겹쳐놓는 식으로 미리 강구해 놓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미국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기 때문에 미국이 쉽게 놓아버리거나 백지화시키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자국민의 이익과 충돌할 경우 비상한 대책을 강구해 관철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불평등 문제, 미국 법치주의가 반론 제기하지 못하게 접근해야

미국식 법치주의는 국내법으로 외국에 제재를 가하는 행위도 하는 등 국제법적으로 받아드리기 어려운 면도 존재한다. 이런 행위는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미국이 전 세계 금융통상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당하는 쪽은 억울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미국의 태도는 완벽한 강자 또는 국제 불량배와 같은 논리다.

미국처럼 한국의 집권세력도 한미관계에서 법치를 앞세우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한미동맹을 강조할 때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준수한다는 원칙을 밝히게 된다. 그러나 국내 야당이나 학계, 언론, 시민사회는 한미동맹에 대해 정부와 동일한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 비판과 대안을 활발히 개진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나아가 정부도 법에 보장된 장치를 활용해 비상한 방법으로 중장기적 국가이익을 위해 필요할 경우 용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과 맺은 방문군 협정(VFA)의 종료를 자국 이익을 위해 미국에 통보한 것과 같은 정치적 결단은 우리나라도 참조할 만하다. 국가간에 협상에서는 상대가 협상에 응하고 협상장에 나오도록 만드는 지혜나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정상화하기 위해 한미군사동맹의 불평등성을 주장하고 시정하려면 동맹의 최고 규범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거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SOFA, SMA만 지적하거나 비판하면 미국인들은 되레 한국인들이 한미군사동맹에 역행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과 관련된 SOFA, SMA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기본 뿌리에서 파생된 하위법 성격의 협정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국에서 핵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언급치 않고 그 하위법인 SOFA, SMA만 거론하는 것은 미국에게 보장된 권리에 대해 부당한 문제제기라는 식으로 미국이 역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무부가 중국이 한국에 배치된 사드에 대해 경고하자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의 합의에 의해 한국과 미국이 한국이 결정한 것’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경고를 일축하면서 한국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국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사드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배치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2월5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한국 내 사드 배치는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하고 위협한다고 말한 뒤 나왔다(미국의소리방송 2021년 2월12일).

사드에 대한 미국무부의 태도를 볼 때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존속되는 한 제2, 제3의 사드 사태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군이 한국에 대해 군사력 배치를 요구할 경우 한국은 허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듭 밝히지만 한미군사동맹은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은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 필리핀의 경우 미군은 필리핀 군 기지 내에서만 주둔할 수 있는 등 미군의 주둔조건을 필리핀이 주도권을 갖게 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도 미군의 일본 영토내 배치가 한국과 같은 권리(right)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고 주둔 문제 등에 대해 수시로 협의하고 관련 조약도 유효기간이 10년이다.

한국도 필리핀과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군사동맹처럼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보장하는 원칙을 확보해야 하는 것을 서둘러야 하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 6가 그것이다. 이 조약6조는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이 조약은 어느 한 당사국이 상대 당사국에게 미리 폐기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This Treaty shall remain in force indefinitely. Either party may terminate it one year after notice has been given to the other Party.)라고 되어 있다. 한미방위조약에는 이 조약을 수정 보완한다는 등의 조항이 없기 때문에 조약의 수정보완을 하기 위해서라도 6조에 의거해 미국에 이 조약의 종식을 미국에 통고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를 한국이 들고 나올 때 엄청난 후폭풍이 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조약이 만들어진 1953년은 특수상황이었고 오늘날 한국은 -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진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해도 - 경제력이 세계 10 위권이고 세계에서 무기 수입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다. 동시에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한국의 사활적 이해관계에 해당할 정도로 불합리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조약의 개폐가 필요하다. 큰 아픔과 혼선이 빚어진다 해도 비정상은 신속히 정상화 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20세기 초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보면 자국이기주의 관철을 위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다. 러일 전쟁 후인 1905년 7월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는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비밀협약을 맺은 뒤 그 해 11월 17일 일본은 을사늑약을 강요해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미국무부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서울 주재 공사에게 서울의 미영사관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은 1910년 8월 조선을 강제 병합해 식민지로 만들었고 그 해 9월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Theodore Roosevelt, Fear God and Take Your Own Part (New York, 1916), 294-97.  https://rmc.library.cornell.edu/Straight/timeline_text.html#top).

미 국무부는 3·1 운동이 발생하자 그 다음 달인 4월 일본주재 미 대사에게 "서울주재 미 영사에게 조선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미국이 도우리라는 믿음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할 것과 일본 정부당국이 조선의 독립운동에 미국이 동조한다고 의심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은 미 언론인의 조선 취재를 금지했다. 윌슨 대통령은 조선의 독립만세 운동에 대해 지지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Frank Baldwin, "Participatory Anti-Imperialism: The 1919 Independence Movement," Journal of Korean Studies, 1(1979): 123-61; Dae-Yoel (Tae-yol) Ku, Korea Under Colonialism: The March First Movement and Anglo-Japanese Relations (Seoul, 1985), 37-303>. 이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일본의 조선 점령에 동의했던 것을 의식한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