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악법의 폐해: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의 사회적 영향” (이재봉 원광대 명예교수 / 2020.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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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10 13:41 조회2,27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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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은 유엔에서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날을 기념하는 ‘인권의 날’이다. 노벨 사망일로 해마다 노르웨이에서 노벨평화상을 주고받는 날이기도 하다. 인권과 평화의 상징적인 날을 하루 앞두고 인권을 폭압적으로 침해하고 평화를 원천적으로 가로막아온 국가보안법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헌법 1조에서부터 민주공화국을 앞세우며, 자유민주주의를 정치 기본이념으로 내세운다.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이자 최고 목표로 삼으면서도 개인의 기본적 자유인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조차 심각하게 침해해왔다. 이렇게 억지스럽고 해괴한 모순이 1948년 정부수립 직후부터 70년 이상 저질러져 왔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나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80년 전후에 대학 다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정치외교학 교수로 일하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소박하게나마 참여해오면서, 국가보안법으로 감금되거나 투옥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만큼 무지하게 지냈고 소심하거나 비겁하게 살아왔다. 몹시 긴장하며 생활하기도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을 갖고 말 한 마디 내뱉거나 글 한 줄 쓰면서 토씨 하나에까지 신경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 악법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이른바 ‘자기 검열’ 하는 것이다.
내가 국가보안법을 용하게 피하면서도 이 악법으로 감금되거나 투옥된 사람들을 위해 법정에 많이 드나들었다. 2008-15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해마다 한두 번 법정 증인석에 앉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공부하거나 운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걸려든 사람들 재판에 ‘전문가 증언’을 한 것이다. 악법을 오용하고 남용하며 민주주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검찰의 횡포와 폭력에 맞서기 위해. 그 결과로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란 책을 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오늘까지 나를 법정으로 부르는 사람이 전혀 없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걸려든 사람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탓이라 생각했다. 악법이 사문화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검찰이 기소해도 무죄 선고율이 늘고 실형 선고율이 줄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전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국가보안법 입건자로 수사 받은 사람이 583명에 이른다”는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의 말을 듣고 놀라고 충격받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해 202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고 한다. 이렇듯 이 법이 살아있는 한 정권에 따라 언제든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몹쓸 법이 하루빨리 폐지되어야 할 이유다.
국가보안법은 악랄한 친일잔재요 심각한 친일적폐다. 친일부역자들은 해방 이후 처벌받기는커녕 1945-48년 미군정에 중용되었다. 영어 좀 알고 행정경험을 지녔다는 이유로. 1948년 들어선 이승만 정부에서도 거듭 고용되어 군대와 경찰을 장악했다. 친일부역의 죄를 덮기 위해 일제 치안유지법을 본떠 만든 게 1948년 국가보안법이다. 1961년엔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통해 집권세력이 되자마자 반공을 국시로 삼으며 반공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두 악법을 합친 게 오늘의 국가보안법이다. 친일잔재와 군사독재의 합작물이 지금까지 존속해온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부터 나라와 민족의 최대 목표인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며 악영향을 미쳐왔는지 그 폐해를 간략하게 얘기한다.
앞에서 말했듯,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와 최고 목표로 삼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개인의 필수적 자유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해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두 가지를 꼽는다면 자유와 평등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 중시하면 자유민주주의 정치, 자본주의 경제, 개인주의 문화로 나아가게 되고, 사회의 조화와 평등을 더 중시하면 인민민주주의 정치, 사회주의 경제, 집단주의 문화로 향하기 마련이다. 어느 한 쪽이 맞고 다른 쪽이 틀리는 게 아니다. 정의나 도덕의 문제도 아니다. 양심과 가치관의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률적으로 자유민주주의나 자본주의만 선택하도록 강요당하며, 인민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선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이거나 호의적으로 표현하기만 해도 처벌당하기 쉽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상대적 장점은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며 다른 의견과 주장도 용인하는 것이다. 개인의 인권향상과 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 악법을 하루빨리 폐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반도가 1945년 외세에 의해 분단된 후 우리는 무려 75년간 분단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한민족의 목표가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의 가장 큰 목표를 추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국가보안법이다. 북한을 ‘반국가 단체’ 또는 적으로 규정하며 통일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조차 통제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1980년대 말까지 반공을 국시 (국가정책의 기본방침)로 삼고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승공통일”을 외칠 때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모순되지는 않았다. 악법이 오용되고 남용되었지만 반북과 승공을 위한 수단이었기에.
그러나 1989년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종식이 선언되자마자 남한이 먼저 북한과 적대관계를 끊고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흔히 진보정부라 불리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전두환 군사독재의 후신 노태우 정부 때 일이다. 1989년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통일방안을 마련했다. 1991년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민족 화해’를 이룩하자는 ‘남북 기본합의서’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중지하고 파괴와 전복 행위를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특히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만든 통일정책은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이름만 고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받고 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3단계 중 1단계가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다.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구하자는 뜻이다.
따라서 늦어도 1989-91년 헌법을 고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했어야 됐다.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고 체제를 존중하며 각각 독립국가로서 유엔에 동시 가입해놓고도,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한다는 헌법 영토조항을 방치하는 것은 모순이다.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자면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는 것은 더 큰 모순이다. 반북과 멸공을 외치던 냉전 시절엔 친북과 지공 (知共)이 처벌 대상이었다면,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탈냉전 시기엔 반북이 비난당하며 처벌받아야 하고 친북은 치하 받고 상도 받아야하는 게 정상 아닐까.
1991년 합의한 대로 우리가 북한 체제를 인정하려면, 먼저 북한을 공부해야 한다. 설사 북한을 적으로 삼으며 승공과 멸공을 외치더라도 북한을 제대로 아는 게 바람직하다. 상대를 먼저 알고 자신을 알아야 (知彼知己) 이긴다고 하지 않는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든 형제로 인식하든, 북한 체제를 부인하든 인정하든, 북한을 공부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 신문조차 보기 어렵다. 북한을 공부하거나 알기 위한 책을 갖고 있으면 ‘이적표현물 소지’ 죄로 처벌받기 쉽다.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불가능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지금 이 글에서 쓰고 있는 ‘북한’이라는 호칭부터 바꾸는 게 좋다. ‘북한’은 독립국이 아니라 한국에 소속된 북쪽 지역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약칭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 조선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지만, 나는 두 나라가 같은 뿌리로 언젠가 하나로 합쳐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공통분모가 있는 ‘남한과 북한’을 즐겨 쓴다. ‘북조선과 남조선’도 괜찮지만 국가보안법에 걸려들기 쉽다. 그 대신 ‘한국과 북한’ 또는 ‘조선과 남조선’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불균형적인 조합이기에 거부한다.
북한에 대한 비방을 중지하고 파괴와 전복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온갖 악의적 비난을 담은 풍선을 북쪽으로 날려 보내도 괜찮고, 평양 주석궁으로 탱크를 몰고 가야 통일할 수 있다는 호전적 주장을 펼쳐도 탈 없다. 북한에 거짓 섞인 악담을 퍼부으면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법적 처벌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을 바탕으로 북한을 긍정적이거나 호의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이나 ‘종북’으로 낙인찍히며 감금이나 투옥까지 당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거듭 밝힌다. 2020년 12월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정책 1단계가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다. 2단계가 ‘국가연합’이고. 1989년 처음 만들어져 군사정부에서든 보수정부에서든 진보정부에서든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도 북한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며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인식조차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유지된다는 게 얼마나 큰 모순인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무슨 수로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겠는가. 북한 비방을 일삼고 체제붕괴를 기대하며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겠는가.
대결과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추구한다는 정부의 통일정책을 따르려면, 북한을 제대로 공부하며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북한의 장점이나 좋은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친북’도 하고 ‘종북’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참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금되거나 투옥당하는 사례와 관련해 군사독재 정권에서 조작되고 왜곡된 북한에 대한 기본적 사실 몇 가지 밝힌다. 북한에 관해 공부하거나 통일운동하다 국가보안법에 걸려든 사람들을 위해 내가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들에게 강의하듯 증언해온 내용이다.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사실이기도 하다.
첫째, 북한은 ‘반국가 단체’가 아니다. 남한 못지않은 국가 정통성을 지녔다. 1945년 해방과 분단 직후부터 1948년 남북한 정부가 세워질 무렵까지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훨씬 선호했다. 사회주의를 탄압하고 자본주의를 강요했던 남쪽 미군정 아래서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길 원하는 사람들이 70-80%였다. 자본주의 정부가 수립되기를 원하는 세력은 친일파와 지주계급을 포함해 10-20%였고. 그런 터에 남쪽엔 친일부역자들이 70% 정도 참여한 자본주의 대한민국이 들어서고, 북쪽엔 공산주의를 통한 독립운동 세력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이러한 북한이 국가 정통성 없는 ‘반국가 단체’란 말인가. 자주성이 없다는 뜻의 ‘괴뢰’는 더욱 아니다. 빌어먹고 굶으면서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거지 국가’나 ‘깡패 국가’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적인 남한이 자주성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한 북한을 ‘괴뢰 국가’로 욕할 수는 없다.
둘째,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분단의 원흉’도 아니다. 해방 이후엔 6.25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이 죽게 만들고, 50년 독재정치를 이끌며 권력세습까지 이룬 불구대천 원수로 삼을지라도, 해방 이전엔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용감하게 목숨 걸고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선 위인이었다. 친일부역자들이 그를 ‘가짜 독립운동가’로 조작하고 깎아내린 것이다. 한반도 분단은 1945년 8월 15일 해방되기 며칠 전 미국이 소련에 38선을 제안하며 이루어졌다. 그리고 분단 때문에 1950-53년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때문에 분단이 굳어지긴 했지만, 분단의 원흉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다.
셋째, 주체사상은 대남 적화전략이 아니다.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수령독재를 미화하고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는 통치이념이나 도구로 악용된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물질보다 사람을 중시하며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자는 철학과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국방비를 북한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더 쓰고 군사력이 세계 6위 안팎이라고 자랑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군대 작전통제권조차 찾아오지 못하는 남한의 비자주적이고 종속적인 현실을 개탄하면서.
넷째, 북한의 연방제통일 방안은 남한을 적화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냉전시대 1980년대 말까지는 남한을 흡수하기 위한 공세적 통일전략이었을지라도, 1990년 이후 탈냉전시대엔 남한에 흡수당하지 않기 위한 수세적 통일방안으로 바뀌었다. 남한에서든 북한에서든 통일정책은 바람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남쪽이 제안한 국가연합제나 북쪽이 제안한 연방제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통일정책을 찾을 수 있을까.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국가연합제와 연방제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하자고 했던 이유다. 이와 관련해, 세계엔 연방제 국가가 20개 안팎인데 가장 대표적 국가가 미국이다. 친미와 반북을 외치는 사람일수록 연방제를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이 글은 6.15남측위원회와 민화협 공동주최 <현재진행형 국가보안법,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2020년 12월 9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발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