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8.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1933년 1월 24일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자락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45년 해방 뒤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백 소장 가족도 남북으로 나뉘어 살게 됐고, 갈라진 집안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유년시절 그는 초등학교만 다니고 혼자 공부했음에도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을 읽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해외유학장려회’ 첫 수혜자로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지만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52년부터 10여년 동안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을 운영했고, 도시빈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농민운동에 몸담았다. 1957년엔 평생동지였던 김정숙 여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60년 4.19 혁명 운동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통일운동을 시작했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에 반대하며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과 반일 투쟁에 나섰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1966년엔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반독재 운동을 전개했다.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를 받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됐다.
1979년 ‘명동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 성고문 진상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0년 옥중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들은 백 소장은 옥고를 치르면서도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1987년에는 학생·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받아 독자 민중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이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2003년), 용산참사 투쟁(2009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2014년), 백남기 농민 사망 투쟁(2015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2016∼2017년) 등 진보진영의 투쟁 현장의 맨 앞자리를 지켰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여러권의 수필집·시집을 낸 문인으로도 유명한 백 소장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1월부터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던 백 소장은 심장질환 등으로 수술과 병원 치료를 받아오다 15일 오전 4시께 영면에 들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