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에서 느끼고 배우다’ (동북아 역사문화 교사 탐방단 김소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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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08 17:19 조회3,55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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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서 느끼고 배우다’
저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사할린 여행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고 동참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 큰 기대나 목적을 가지고 떠나려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와 달리 이번 여행을 준비하셨던 서울과 부산 지역 선생님들께서는 우리 조상들의 사할린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를 공부하시고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시고 출발하셨기에 시작부터 작은 울림을 가지고 출발하셨기에 스스로 많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할린에 도착한 저는 ‘가슴 속 울림은 미리 준비하지 못해도 충분히 일어난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 속엔 국외 이주민의 삶과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간도, 연해주, 일본, 미주 지역... 그러나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그 속에 사할린의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방문은 저에게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교과서에 등장하지도 않는 그들의 삶은 어떠하며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교사의 입장에서도 또 다른 가르침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할린에 도착한 이튿날, 이제는 폐광이 되어버려 더 황량하게 느껴지던 브이코프 탄광을 둘러볼 때 들려오던 우리 선생님들의 깊은 탄식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추위, 배고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무차별 공포감에 휩싸였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려왔고, 80년 전의 그들을 그곳에 버려두고 떠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돌아오던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지난여름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했는데, 그때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잠시 나마 독립투사들의 비장한 각오를 엿보았던 마음과는 또 다른 저릿함이 한동안 저를 지배했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이 너무나 슬퍼보였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투사들의 노력도, 무력한 나라로 인한 강제 징용의 상황도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이며 슬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종한글학교에 방문해 사할린에 거주하시는 우리 어르신들을 뵈면서 할머님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고국의 달력은 그 자체가 고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를 마주하자마자 손을 잡고 반겨주시던 할머님, 8살에 부모님을 따라 사할린에 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이제는 홀로 남으셨다는 할머님, 어쩌면 고국이 미처 아픔을 감싸드리지 못해 생긴 또 다른 외면에 우리를 경계하시다 헤어질 땐 추운 날씨 마다하지 않고 배웅해 주시던 할머님,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양산도 민요를 다시 듣고 싶다고 하시던 할머님까지.. 그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몇 시간 동안 함께하며 웃어 드리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렇기에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명쾌해 졌습니다. 사할린에 계신 우리 동포들을 잊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비좁고 허름한 건물에서 힘겹게 난간을 붙잡고 2층 계단을 오르내리시는 할머님들의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울컥했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것이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마음 쓰고 함께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았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인간 사회는 짐승들의 약육강식 세계와 다를 바 없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 될 겁니다. 80년 전의 비극과 고통은 할머니들이 아닌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할머님들이 힘들게 살아가시면 안 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로 다짐했습니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점철된 모습은 잠시 내려놓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사할린에 계시는 모든 동포들이 함께 하고 우리 대한민국이 그들을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할린에서 돌아온 뒤에도 저희와 함께 민요를 부르며 춤을 추시던 곱고 고왔던 할머님들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사할린은 거센 추위 속에서도 정말 아름답고 깨끗한 땅이었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 즐비하게 늘어선 자작나무 숲,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정도의 절경이었던 오호츠크해, 꽃사슴이 무리지어 뛰어다니던 드넓은 땅 등 모두 새로운 경험이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사할린의 아름다움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순수하고 친절했던 사람들의 기품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무뚝뚝해 보이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낯선 외국인을 위해서 얼음물 속에도 손을 넣어 물고기를 건져주는 그들의 따듯함이 사할린의 추위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충분히 따뜻했습니다. 백 여 년 전 그 동토(凍土)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모습도 언어도 다른 그들과 살아가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어쩌면 그곳에 자의반 타의반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사할린이 지닌 다양한 아름다움 때문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것이 지워지고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고 세상 곳곳에는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용기내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할린에서 만난 어떤 분도 자신은 옳은 것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하셨지요. 그 또한 저에게는 울림으로 다가왔기에 앞으로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 소외되었던 기억들에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사할린이라는 선생님이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 동북아 역사문화 교사 탐방단 김소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