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의 역사
분단의 그늘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쳐온 남북 이산가족들이 1985년 처음으로 다시 만난 뒤 29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까지 19차례에 걸쳐 상봉 행사가 열렸지만 이마저도 남북관계에 따라 심한 부침을 겪었다.1950년 6·25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 확인은 1956년에 처음 이뤄졌다. 대한적십자사가 ‘실향사민 실태조사’를 통해 북한에 7034명의 생사 확인을 요청했고, 북한은 337명이 생존해 있다는 회신해 왔다. 그러나 곧바로 상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공고한 남북대치에 가로막혀 있던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에 처음 이뤄졌다. 그해 9월20일, 남쪽에서 35가족, 북쪽에서 30가족이 ‘고향 방문단’이란 이름으로 평양과 서울을 방문해 만났다. 이에 앞서 1983년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는 453시간45분의 연속 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다시 15년간 진전이 없던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다시 물꼬가 트였다. 2000년 8월15~18일, 3박4일 간 제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해마다 한두 차례의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다시 남북관계에 따라 심한 부침을 겪었다. 2008년 금강산에서 북한군이 남쪽 관광객 박왕자씨를 사격해 숨지게 하면서 이산가족 상봉도 8년 만에 또다시 중단됐다.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17차, 18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다시 열렸지만, 결국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그 뒤 3년이 넘도록 중단돼 왔다. 그러다 남쪽의 정부가 바뀌고 난 지난해 6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제안하면서 다시 불씨가 살아났다.
1985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19차례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가족을 만난 사람은 남북을 통틀어 2만5000명에 불과하다. 통일부의 이산가족 등록 현황을 보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9287명으로 이 가운데 5만7784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