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소식

홈 > 소식 > 자료실
자료실

북한의 대남정책 방향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2014. 3.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19 13:23 조회4,132회

본문

북한의 대남정책 방향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45)
2014년 03월 11일 (화) 07:05:34정창현 tongil@tongilnews.com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취임 2년을 맞고 있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마련된 통일의 기본원칙과 방안을 계승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6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필생의 뜻과 유훈을 관철하여 반드시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실현”해야 한다고 발언한 후 여러 차례 ‘통일 유훈’의 계승을 언급했다.

통일의 기본원칙과 방안 계승

▲ 김정은 제1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 제시된 관업 관철을 위한 평양시 군중대회가 6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자료사진-노동신문 캡처]

지난 2년 간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개 발언과 신년사를 통해 통일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통일의 주체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이며, ‘우리 민족끼리’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해결하자면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합니다”라며 “조국통일의 주체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이며 나라의 통일은 오직 우리 민족끼리 입장에 철저히 설 때 민족의 이익과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둘째, 통일을 바라는 누구와도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2012년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적이고도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라고 밝혔고, 올해 신년사에서도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남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리행하는 것은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근본전제”라고 밝혔고, 올해 신년사에서도 “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할 것을 강조했다. 7.4남북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이행을 당면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3가지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 북한의 입장은 자주적 원칙을 지키면서 민족끼리 통일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기존의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면 누구와도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대화의 상대에는 우리 정부 당국도 포함된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개최된 남북고위급접촉도 이러한 기조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박근혜와 그 패당’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맹비난을 여러 차례 쏟아내던 것과도 사뭇 다른 태도이다.

남쪽 당국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

▲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은 대박"이라며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

1980년대 후반이후 북한의 대남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통일논의와 추진 당사자로서 남쪽 정부를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1960년대 이후 북한의 당대회와 당 규약의 변화에서 잘 드러난다.

북한은 제4차 노동당대회에서 “남조선에서의 혁명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족해방혁명이며 봉건세력을 반대하는 민주주의혁명”임을 천명하였다. 남조선혁명론은 “우리 조국의 통일과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하여서는 북반부의 사회주의 력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조선의 혁명력량을 강화해야 하며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촉진하는 동시에 남조선에서 혁명을 수행해야한다”는 입장에서 제시된 것으로써 이는 전조선의 혁명을 위해 선 남조선혁명, 후 조국통일을 통해 전조선의 혁명을 달성하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남한의 상황을 “반파쇼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각계각층 인민들의 대중적인 공동투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구비된 것으로 판단했다.

1970년 제5차 조선노동당 대회에서도 북한은 남조선혁명의 기본 성격을 “미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민족해방혁명인 동시에 미제의 앞잡이들인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들과 그들의 파쇼통치를 반대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정의하고 이 혁명의 기본 임무를 “남조선에서 미제국주의 침략세력을 내쫓고 그 식민지 통치를 없애며 군사파쇼독재를 뒤집어엎고 선진적인 사회제도를 세움으로써 민주주의적 발전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1980년 10월 6차 당 대회를 계기로 대남노선에서 일정한 변화를 시사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새로 개정된 당 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규정해 당 규약상 기존 노선을 유지했다.

다만 북한은 당 대회 보고와 당 규약에서 3대혁명역량강화론, 민주기지론, 남조선혁명론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북한이 ‘혁명전략’에서 ‘연방전략’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북한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의 선결조건으로 세 가지를 언급해 사실상 남쪽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첫째, “남조선에서의 군사파쇼통치를 청산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고, 둘째,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제거하는 것”으로써 이것은 오직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꿈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으며, 셋째, “미국의 ‘두개조선 책동’을 저지시키면서 조선의 내정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여러 차례 “전두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당시 북한이 제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이 ‘민주세력’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1988년부터 북한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 주석은 1988년 신년사에서 “조국통일문제는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는 문제가 아니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고 우세를 차지하는 문제도 아니”며 따라서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 우에서” 통일할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변화는 1993년 4월 발표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으로 공식화 됐다.

소연방의 해체, 남한의 국제적 지위향상, 남한 정치의 안정화와 전향적인 북방정책 추진 등의 대외정세의 악화와 북한의 경제적 위기 심화 등 ‘3대혁명역량’이 약화된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정책은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됐다. 즉 ‘선 남조선 혁명 후 합작통일’에서 ‘선 남북공존, 후 연방통일’로 변화된 것이다. 특히 1991년 남과 북의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남한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대남정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담화에서 이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북과 남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대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힘을 합쳐 나갈 것을 주장한다.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이다. 북과 남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를 전환시켜야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 ...앞으로 남조선당국자들이 온 민족의 기대에 맞게 오늘의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대결정책에서 벗어나 실지 행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면 우리는 그들과 아무 때나 만나 민족의 운명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협상할 것이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것이다.”

남쪽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남한 당국자의 태도에 따라 당국간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변화에 따라 북한은 김대중 정부가 화해협력 정책을 펴자 이에 호응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과 차이점

▲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통일방안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자료사진 - 민족21]

남과 북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공통점은 ‘평화공존’의 단계를 둔다는 점이다. 두 방안 모두 2체제 2정부를 유지하면서 두 정부 사이에 협력체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합의에 대해 남과 북은 서로 편의적으로 해석했다. 남측은 북측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으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남북연합제안에 다가왔다고 강조했다. 남과 북의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그대로 가지고 연방국가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비록 명칭에 ‘연방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연방제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면 북한은 “남북공동선언에서는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련방제통일의 길로 나아갈 데 대하여서도 밝혔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로동신문》이 2000년 12월 15일자에서 “6.15공동선언에는 북과 남의 립장과 주장이 공평하게 반영되어 있고 민족공동의 지향과 요구가 담겨져 있을 뿐 어느 일방에게 치우친 조항이란 없다”고 평가한 것처럼 6.15공동선언은 남과 북의 통일방안이 갖는 공통점만을 확인한 것이지 어느 일방의 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처음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 북한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 원칙에 기초해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 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서도 드러나듯이 남북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가장 큰 차이는 민족통일기구(낮은 단계의 연방정부)의 설치여부다.

남쪽에서 제안한 연합제는 남북이 대외적으로 각각 주권을 유지하는 독립국으로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를 유지하며 통일 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국가연합의 형태를 뜻한다. 그리고 북쪽에서 제안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북이 서로 다른 정부와 제도를 유지하면서 각각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지니되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설치하여 하나의 연방국가를 이루는 형태다.

따라서 두 통일방안의 공통점은 남북이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지향하고 유지해왔기 때문에 급격하게 통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판단하여 잠정적으로 각각의 이념과 체제, 제도와 정부를 유지하는 것이다. 두 통일방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남북연합이 대외적으로 ‘두 개의 국가’인데 반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라는 점이다.

다만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핵심인 ‘민족통일기구’구성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남북연합 단계’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배석한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방안(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은 냉전시대의 산물로서 비현실적’이라며 “사실상 외교권과 군사권을 통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각료급은 각료급대로 협의기구를 만들고, 또 국회는 국회대로 의회차원에서 협의기구를 만들고, 정상간에는 지금과 같이 정상간에 서로 만나서 남북간의 모든 문제를 서로 협의해서 합의하며, 또 합의한 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설명하며 “협의체 구성과정에서 중앙정부를 하나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연방정부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남북연합이 서로 통하는 데가 있으니까 그런 방향으로 노력을 하되 앞으로 같이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가자”라고 제안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설명 중 앞 부분은 남북연합단계에서 우리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기 때문에 ‘공통점’을 확인한 것이고, 다만 중앙정부(연방정부) 구성은 북한의 지향이기 때문에 합의가 아닌 ‘차이’로 남겨둔 셈이다.

북한 ‘식민지’ 규정 폐기

▲ 지난 2월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 들어 처음으로 남북 고위급 접촉이 판문점에서 열려 이산가족 상봉과 상호비방 중지 등에 합의했다. [사진출처 - 통일부]

일부에서는 2010년 개정된 당 규약을 근거로 북한이 ‘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1980년 노동당 6차 당대회 이후 30년만인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 대표자회를 개최해 당 규약을 개정했다. 개정 당 규약은 “조선노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 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라고 되어 있다. 남한 혁명의 성격에 대해서도 이전 규약의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의 혁명”에서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으로 수정했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북한이 1단계로 낮은 단계 연방제를 실천하여 이 기간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2단계로 고려연방제를 실천하여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라는 적화통일을 달성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낮은 단계 연방제’가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위한 중간절차에 불과한 ‘위장전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한 북한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은 2010년 당 규약 개정 때 남한 사회를 ‘식민지’로 규정했던 이전 규약의 내용을 ‘식민지 통치를 청산한다’는 표현으로 바꿨다. 남한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남한 정부가 보여주는 대북관계와 대북정책의 성격을 기준으로 ‘식민지 통치’를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평가된다. ‘민족해방, 인민민주의 혁명’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으로 바꾼 것도 남한 정권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계급성을 배제하고 북한이 평가하는 민족주의 자주 정권 정도를 기준으로 하겠다는 정도로 조정된 것으로 평가된다. 남한사회에 대한 규정보다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남한 사회의 미국 추종 여부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를 ‘식민지 반(半)자본주의’라고 성격 규정했던 것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인 셈이다. 이것은 남한 당국을 ‘남조선괴뢰도당’에서 ‘남조선 당국’으로 호칭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과도 연관된다.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여부에 따라 ‘남조선 괴뢰정권’과 ‘남조선 당국’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을 고려할 때 당연한 변화다.

둘째,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정권 수립이후 지속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고, 남쪽의 사회단체에도 이를 선동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1990년대 들어 전술적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주한미군 인정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정세에 따라 활용해 오고 있다.

북한은 1990~92년에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공식발언을 처음으로 했다. 이 즈음 북한 관계자들은 “미북(美北) 양측이 평화조약을 모색하는 동안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對北) 억제로부터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와 미국은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궁극적 목표로 하되, 그 중간 단계로서 미군을 ‘평화유지군’ 등으로 역할 변경시킴으로써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을 변경시켜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체제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과 회담과정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조건부로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사실 제 생각에도 미군주둔이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변경돼야 한다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중략). 미국과 관계정상화가 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모든 안보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같은 뜻은 미국에도 전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데 왜 언론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고 묻자 김정일 위원장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답했다. 다만 북한은 여전히 북미관계에서 긴장이 조성되거나 평화협정 체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주한미군 범죄 발생 등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있을 때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곤 한다.

중요한 점은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수립이나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평화협정 체결 후에는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한미동맹문제 등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노동당 규약의 규정만으로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우리의 헌법 규정은 논외로 치더라도 국가보안법 제2조는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 보수학자들도 “현행 정부 참칭 조항을 그대로 둘 경우 북한은 대남적화활동과 관계없이 당연히 반국가단체가 된다”며 “그렇지만 북한은 원초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려는 자세는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의 상호 실체 인정.존중정신에 맞지 않는 점이 있다. 또한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6.15남북공동선언의 채택 등으로 남과 북이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전향적인 태도와 배치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제성호, 〈남측 연합제와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의 비교 및 상호 접점도출방안〉). 당연히 우리가 북한에게 남북협력시대에 맞게 당 규약 개정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국가보안법을 개정해 “정부 참칭 부분은 삭제돼야 한다.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은 여전히 공식담론을 통해 우리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북한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내부적으로 ‘괴뢰정부’란 표현을 썼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과거 냉전시기 남북대결상황 때와는 성격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6.15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 합의가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한다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한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남북공동 선언의 이행을 주장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남한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남측이 남북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체제 비난을 중단하면 남북관계 경색이 풀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는 메시지다. 실제로 북한이 지난 1월 ‘중대 제안’에서 상호 비방 중단을 제안했고, 2월 남북고위급접촉에서도 비방 중상 중단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제기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신뢰 형성’도 북한의 체제를 인정할 때만이 가능하며, 그런 조건에서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 남북관계 개선이나 남북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브라우저 최상단으로 이동합니다 브라우저 최하단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