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중국 “전쟁 기계 미국, 인류의 미래에 해악 불렀다” (2023.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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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1-02 09:13 조회48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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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중국 “전쟁 기계 미국, 인류의 미래에 해악 불렀다”
기사입력시간 : 2023/11/01 [16:03:00]
박명훈 기자
중국 국영 신화통신이 9월 6일 보고서 「미국 군사 패권의 기원, 실태와 해악」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군사 무력을 앞세우는 미국의 패권 정책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1776년 건국 이후 200년 넘는 기간 다른 나라와 지역에 개입하며 전쟁을 벌여온 미국을 “전례 없는 전쟁 기계”라고 꼬집었다. 또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숱한 침략전쟁을 벌이며 군사 패권을 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등 “전략적 실패”에 빠졌다고 부각했다.
현재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을 나토와 인도·태평양 군사 동맹 체제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군사 패권을 고수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는 패권을 고수하려는 미국이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에 빠지는 등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현 국제질서에 관해 신흥국이 빠르게 부상하면서 “국제적 힘의 균형은 다극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라고 평가하면서 “국제정세의 심각한 변화에도 미국은 패권주의적 사고방식을 계속 집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오늘날 세계는 한 세기 동안 볼 수 없었던 큰 변화를 겪고 있다”라면서 “그런데도 군사 패권을 확대하는 미국의 여전한 행보가 인류의 미래에 불안과 해악을 부르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군사 패권 형성 ▲군사 패권 유지를 위한 미국의 행위와 수단 ▲미국 군사 패권의 위험 총 3장으로 구성됐으며 73쪽이다.
아래는 보고서를 번역한 전문이다.
「미국 군사 패권의 기원, 실태와 해악」
●서문
2021년 8월 30일,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마지막 병력을 실은 군용 화물기가 이륙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끝났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이후 의회 증언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식에 관해 “전략적 실패”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와 그 폐해가 다시 한 번 국내외에서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년째인 해이다. 이 전쟁은 미국이 자신의 절대적 안전과 지정학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거짓말로 시작되었고 주권국가를 상대로 한 침략전쟁이었다. 이라크와 중동, 세계 각국, 그리고 미국 자신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부정적 작용을 끼쳤다.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은 끊임없이 무력으로 확장을 추구해왔다. 미국은 멕시코-미국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해 지역을 초월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스페인-미국 전쟁 뒤에는 서반구와 동아시아로 침투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 권력을 투사하고 규칙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양극화 구조는 냉전 이후 단극 패권으로 대체되었고, 미국은 세계의 군사 패권을 쥐었다. 이후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 군사 패권을 유지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건국하고 240년이 넘는 역사를 통틀어 미국이 전쟁을 하지 않은 기간은 20년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나라라고 불릴 만하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2001년까지 전 세계 153개 지역에서 248건의 무력 충돌이 있었고, 이 가운데 201건은 미국이 주도해 약 81%를 차지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 군사적 촉수를 뻗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 최소 80개국에 750여 개의 군사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유엔의 193개 회원국 중 약 175개국이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2001년부터 ‘대테러’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전쟁과 군사 작전을 벌였고 민간인 38만 7,000여 명을 포함해 약 92만 9,000여 명이 숨지고, 약 3,8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직접적인 결과를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명백한 운명이나 미국 예외주의 등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패권을 위한 해상력과 패권 안정 이론을 정당화했다. 미국은 자주 전쟁을 일으키고 강제 개입에 열중하며 다른 나라를 통제하려는 집착을 가지고 있다. 육지와 바다, 하늘은 물론 나아가 우주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편협하게 추구한다. 사실상 미국이 패권을 좌우하는 단극 세계인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군사 패권을 통해 패권적 정책과 행동을 공표하여 전 세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다른 나라의 주권을 짓밟으며 국제질서를 어지럽혀 평화적 발전을 방해한다. 미국은 숱한 위험을 초래하는 위협을 지속하며 지구의 안보와 안정을 훼손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태롭게 한다.
이 보고서는 사실과 자료를 활용해 미국 군사 패권의 이념적 뿌리를 추적하고 미국이 군사 패권을 유지 및 확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과 도구를 분석하며,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미국 군사 패권의 악행을 폭로한다. 국제사회의 시각으로 미국 군사 패권의 실체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려는 것이다.
●제1장: 미국의 군사 패권 형성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전략사상가들의 야망은 “대양과 모든 해양을 지배”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들은 미국이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제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미국이 “세계 패권의 서막일 뿐인 미국 대륙을 먼저 통제하고 곧 전 세계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으며 “미국의 세기”가 오리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거울이다. 넓게 보면 미국의 군사 패권이 발아, 발흥, 확립, 공고화되고 확장된 역사의 뿌리는 미국이 ‘제국적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동서, 육지에서 바다로, 각 지역과 세계로 팽창한 것과 일치했다.
◼1.1 미국 군사 패권의 역사 요약
미국 군사 패권의 역사는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멕시코-미국 전쟁부터 스페인-미국 전쟁까지는 준비기이며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는 확립기이다. 2차 세계대전은 경쟁기이다. 미국의 패권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끝난 뒤 정점을 찍었다.
19세기 중반 미국-멕시코 전쟁부터 19세기 후반 미국-스페인 전쟁까지는 미국이 군사 패권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독립과 건국 이후 미국은 “서쪽으로의 확장”을 시작했고 그 과정은 거의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1846년부터 1848년까지의 멕시코-미국 전쟁은 미국의 국경 밖에서의 첫 번째 주요 군사 작전이었고 다른 나라를 점령한 첫 번째 전쟁이었다. 미국은 전후 약 230만 제곱킬로미터의 토지를 압류하여 북미 대륙을 넘어 영토를 늘렸고 태평양에 접근함으로써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경제적으로 팽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군사적 팽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미 해군의 현대화는 점차 진전되었다.
1898년의 스페인-미국 전쟁은 건국 후 미국 최초의 제국주의 시대의 첫 고조기로 여겨진다. 북미 이외 지역에서 벌어진 이 첫 정복 전쟁에서 미국은 스페인을 물리치고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동시에 하와이를 합병함으로써 미국이 패권과 확장의 길로 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미국은 현재 카리브해와 태평양에 군사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국경의 급속한 확장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힘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통치자들의 갈망을 보여준다.
미국의 군사 패권은 20세기 전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에 확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군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전쟁 발발 후 미국은 1916년 국방법과 해군법을 통과시켜 육군과 해군을 증강시켰다. 그 후 1917년에 참전하여 대규모의 군사력을 유럽에 배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세계에서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1917년 13만 명 이하였던 입대자가 400만 명으로 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계화 부대와 병참 지원 체계가 구축되었다. 1922년 5강 조약으로 알려진 워싱턴 해군 조약의 발표 이후 미국의 해군력은 계속해서 성장하였다.
미국은 1922년에 체결된 해군 군비 제한 조약을 통해 해군의 규모를 영국과 동등하게 키웠고 일본의 해군력을 제한하였다.
이는 영국이 자신의 패권을 미국에 넘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세계 정치에서 유럽 시대의 종말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어났다. 미국은 전쟁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엄청난 군사적 잠재력을 드러냈고 태평양 전역과 유럽 전역이라는 양 전선에서 싸웠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전쟁 이전보다 강해진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두 차례의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어느 정도 앞당겼으며, 핵무기의 위력을 충분히 과시하고 미국의 군사 패권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닦았다.
미국은 지금까지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전례 없는 전쟁 기계로서 패권을 굳히는 초석을 놓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은 1,250만 명의 군인을 보유했으며, 해외에는 750만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해군은 대형 군함 약 1,200척을 보유했고 공군은 장거리 폭격기를 보유하며 핵무기를 독점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군사 패권을 확립한 미국은 전략적 중심축인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을 통제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역사상 최초의 강대국이 되었다.
그 뒤 40년 넘게 이어진 냉전은 미국과 소련의 군사 패권 경쟁 시기였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투입해 군비 경쟁을 했고 해외에서 전쟁이나 대리전을 벌였다. 이 시기 미국이 개입한 두 개의 대규모 전쟁, 즉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모두 “공산주의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50년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문서 68호(NSC68)는 냉전 시대 국가의 기본지침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전방위력’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세계에서 더욱 빠르게 구축된’ 군사적 우위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수립된 전쟁 정책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미국 군사 예산의 큰 폭 증가, 재래식 무기 및 핵무기의 대규모 구축, 기술 우위 향상, 소련에 대한 위협, 해외 이익의 방어 등을 포함하였다.
이를 위해 미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재래식 및 핵전력을 건설하고, 세계 곳곳에 거대한 양자 및 다자간 동맹과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다. 전 세계에 군사 기지가 있지만 이러한 성격의 기지는 소련에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1950년대에 소련이 앞섰던 재래식 전력 규모의 우위를 핵전력의 우위로 상쇄시켰다고 지적했다.
1970~80년대 소련은 미국과 핵균형을 이뤘지만 미국은 재래식 유도무기를 개발하고 전장의 연결망을 구축했다. 이 두 가지 “상쇄 전략”은 미국이 소련과의 군사적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탈냉전 시대에도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양극화 구조는 냉전과 함께 막을 내렸고 미국은 군사 패권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전 세계의 모든 해양과 바다를 통제할 수 있었고 해상, 육상, 공중 작전으로 해안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 능력도 발전시켰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미국의 군사적 추종국과 예속국이 있다.
미국은 군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방비 증액, 군사력 확충, 기지 건설 등을 통해 세계에서 군사 개입과 군사 억지력을 강화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대한 군사적 억제력을 키워나갔다. 군사 행동을 통해 세계의 지도자로서 군사 동맹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려 노력했다.
1990년대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동맹의 결속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을 장려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지정학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양자 동맹을 고수하였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장기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국력을 크게 고갈시켰고 미국의 명예도 훼손시켰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군사 무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에 개입하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군사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작전 개념의 통합과 적용, 동맹 체제의 심화와 조정을 통하여 군사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1.2 미국 군사 패권주의의 근본 원인
“제국”, “패권”, “권위” 등의 신념이 미국 역사 전반을 꿰뚫고 있다. 비록 미국은 정치적 용어인 제국이라는 단어를 거부하지만, 그 신념은 건국 이래 미국의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사상은 세계 군사 패권을 고수하려는 미국의 정책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왔다.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월트 휘트먼은 일찍이 1860년 초 미국이 제국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이것을 찬양한다. 유례없이 강력한 새로운 제국이 꿈속에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노래한다. 나는 더 위대한 패권을 찬양한다.”
미국의 시대상을 다룬 작가 로버트 캐플런이 쓴 책의 제목은 간단한데 『제국의 황야』이다. 미국 역사가 버나드 드보토는 ”꿈이든 사실이든 아메리카 제국은 미국보다 먼저 탄생했다“라고 지적했다.
◼제국의 운명 개념: ‘명백한 운명’에서 미국 예외주의
군사 팽창과 전쟁은 미국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이념적 뿌리는 ‘제국의 운명’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성격의 가치관은 북미 대륙에 서양 식민지 주민들이 도착하면서 생겨났고, 특히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초대 총독 존 윈스럽이 한 설교에 반영되었다.
1630년 식민지에 도착하기 전 청교도의 이민 지도자는 “우리는 최고의 도시를 만들 것이며 모든 눈길이 우리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격언을 퍼뜨리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240여 년 동안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전해졌으며 이렇게 형성된 미국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은 미국이 점차 문명의 이름으로 “탈국적”인 정복권을 신념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현대 세계사의 대가인 에릭 홉스봄의 표현대로, 이러한 초기 결정은 미국이 확장을 추구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대륙의 거인이 되려 하던 미국은 대륙의 모든 인구를 지배하게 됐다. 이는 미국이 자신을 구세주로 여기는 근본적인 믿음이다.
이후 ‘명백한 운명’과 ‘미국 예외주의’라는 두 개의 중요한 주장은 미국의 군사적 확장과 군사 패권에 이른바 ‘합법성’과 ‘신성성’을 부여해 왔다.
명백한 운명 “매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는 1845년 미국 칼럼니스트 존 오설리번에 의해 제안되었다. 하나님이 북미 대륙과 그 너머로 미국의 영토와 세력권을 넓혀 체제와 가치를 퍼뜨리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1803년 미국이 프랑스에서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영토를 넓힌 사건이 “명백한 운명”이라는 믿음 위에 제국을 건설하는 실질적 움직임으로 이어졌다고 여긴다.
미국과 영국이 1812년 전쟁을 일으키기 전, 무력을 동원한 영토 확장을 지지했던 미국의 전쟁 강경파들은 처음으로 정치적 세력으로서 ‘명백한 운명’을 내놓았다. 텍사스에서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확장하고 원주민들을 박해하는 근거이자 구실이 된 것이 ‘가장 명백한 운명’이다. 이는 이기심과 인종차별을 나타낸다.
세계사가 진전하고 미국의 국력이 높아지면서 20세기 이후 ‘명백한 운명’은 미국의 세계 지배와 가치 수출, 외국의 군사 개입을 위한 투쟁에서 이념적 뿌리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 예외주의’에 따르면, 미국은 인류 역사상 문명과 진보의 방향을 제시하는 유일무이한 나라이다. 영국계 미국인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책 『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영국은 유럽에 속하고, 미국은 그 자체에 속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는 “미국 예외주의”의 초기 표현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대외 팽창은 낡은 질서를 깨고 이른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예외주의는 특히 미국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과 확장 정책의 원동력이자 구실이 되었다. 예외주의는 미국 외교 정책의 뿌리 중 하나가 되었고, 패권 국가로서 미국이 과거 제국보다 더 낫고 더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역할도 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은 “제국의 역사학자들은 아직도 미국의 ‘예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미국이 다른 69개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예외라고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제국주의 세계관: ‘해양 세력 이론’에서 ‘패권 안정 이론’으로
미국은 확장과 군사 패권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군사 패권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이론 체계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19세기 말의 스페인-미국 전쟁은 세계에서 미국의 지위를 뿌리부터 뒤집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국 내에서 외부 확장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확장을 주장하는 ‘이론’도 등장했다. 그 중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의 ‘해양 세력’ 이론은 당시 팽창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정치적 요구를 충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 해군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해양 강국론’은 미국의 군사력 발전과 패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파나마 운하를 점령하고 카리브해를 지배하는 것에서 “대백함대”를 창설하고 극동과 태평양으로 이동하며 전 세계의 해군 기지를 획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미국은 점차 바다를 장악했다.
20세기 초, 국제관계 규율의 등장과 관련한 이론의 발전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었고, 이는 국제관계론의 성숙 및 발전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이 이론의 “연구 중심지”였으며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이론학파는 미국의 패권 추구와 보존, 그리고 외국의 군사 개입에서 미국의 기초와 지도 원리를 제공해 왔다.
현실주의 학파는 권력 정치를 중심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신현실주의의 핵심 관점은 국제사회가 무정부 상태에 있고 생존과 안보가 국가의 주요 고려 사항이며 군사력이 국가 권력의 첫 번째 요소라는 것이다.
공격적 현실주의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군사적 우위가 클수록 안전하다고 믿는다. 공격적 현실주의에 따르면 모든 나라는 국제체제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그 이상적인 결과는 국제체제에서 패권 국가가 되어 생존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다른 이에게 넘길 수 없는 권리를 누린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논리는 이른바 자유 국가가 인권문제를 핑계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권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으로써 다른 나라에 개입하여 이른바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자유주의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이상적인 길”이다. 이 이론의 형성과 발전은 미국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정권 교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데 커다란 충동과 동기를 줬다.
패권안정론, 단극안정론, 민주평화론 등도 학계와 정책 분야에서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왔다. 패권안정론은 패권국의 존재가 국제체제에 상대적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반면, “미국 국력의 상대적 쇠퇴와 무력 사용의 자제는 초강대국들 간의 불안정한 공존의 시대를 불렀다”라고 제시했다.
단극안정론은 탈냉전 이후 세계가 미국이 주도하는 안정된 단극체제를 통해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패권안정론을 계승, 발전시킨 이론이다. “너무 적은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이 된다. 권력 분배를 고려할 때, 개입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충동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미국의 개입은 한 명의 유력한 지도자를 가진 체제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요구가 있기에 이루어졌다. 이 이론은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국제적인 힘의 역학관계를 반영한 것이며, 미국의 대외 개입주의에 관한 이론적 해석이다.
또한, 민주평화론은 냉전이 끝나고 미국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군사 패권을 모색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민주평화론의 중심 논거는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전쟁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증진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는 1990년대에 동진을 확대하고 ‘주권 위의 인권’이라는 논리를 펴 1999년 유고슬라비아를 공습했고, 2011년에는 이른바 “보호 책임”을 명분으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을 썼다. 이러한 일련의 군사 행동은 미국 정부에 의해 지원되고 장려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가 발현된 결과다.
사실상, 이 이론들 중 어떤 것도 역사와 현실의 시험을 견딜 수 없다. 경험에 따르면 이 이론들은 어떻게 표현하든 모두 미국의 군사 패권과 이익을 수호하고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 핵심에는 군국주의, 확장, 개입, 도덕적 미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제국주의 사상이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국이 군사 패권을 촉진하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1.3 미국 군사 패권주의의 근본 동기
미국에 의한 군사 패권의 유지와 확대는 이익, 전략, 국내정치라는 세 가지 근본적인 동기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 관점- 이해관계: 자본 확충의 성격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국가 사이에 믿을 만한 유일한 유대는 공유된 이익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설립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공유된 이익을 정부를 위한 일반 원칙으로 세웠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은 통치 원칙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경제는 정치의 기본이고 정치는 경제의 반영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 진영 내부에서 상품을 팔 적절한 시장과 자본 투자를 위한 적절한 장소를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은 남는 상품, 남는 시장, 남는 자본의 투자 기회를 찾으려 비자본주의 지역과 심지어 자본주의 지역까지 노예화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현상으로서 경제 체제에 의존하는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는 즉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 패권의 경로는 대략 자본 확충의 경로와 일치한다. 독립 후 미국은 국경을 서쪽과 남쪽으로 확장하며 토지와 자원을 약탈하고 드넓은 내수 시장을 확보하였다. 이를 통해 완성된 산업화, 도시화, 농업 기계화는 미국이 자본주의 강국이 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서반구를 ‘먼로 독트린’으로 지배하고 제국의 변두리 자원이 풍부한 ‘황금의 나라’를 점령하였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이 발발했고, 식민지들은 다시 분할되었다. 미국은 태평양과 그 연안의 섬과 육지에서 상업적 통제권을 획득했다. 1899년 ‘열린 문 정책’을 상징으로 삼아 유럽과 아시아의 이익을 놓고 경쟁했다.
그 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시장과 경제의 생명줄을 손에 쥐었다. 특히 군사 패권에 필요한 전략적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석유와 광물 등 에너지 매장량이 풍부한 중동 등 자원을 보유한 지역을 통제해 왔다.
다음은 몇 가지 사례이다. 미국은 파나마의 독립을 부추겼고,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권리와 영구 임대권을 획득했다. 그것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그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주었고, 중동에서의 확장을 통해 미국의 석유 회사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등 중동 국가에 장기적으로 군사력을 결집시켰다. 또 걸프전과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불복종’ 국가들을 상대하며 석유산업 질서 확립 및 에너지 안보를 공고히 하였다. 시리아의 석유와 가스관과 주요 곡물 생산지를 통제할 기회를 얻기 위해 불법으로 시리아에 군대도 주둔시켰다. 심지어 세계의 중요한 에너지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질식시키기 위해 선상 항공기와 항공모함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순찰하도록 보냈다.
미국이 보기에 패권국은 원자재와 자본의 원천, 시장을 통제하고 고부가 가치 생산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정벌은 다른 강대국과의 추가 경쟁에서 사용될 수 있는 인력과 재료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군사적 방법으로 자원과 시장을 얻는 것이 가장 쉽다.
두 번째 관점- 전략적 추진: 절대 권력과 절대 안보
미국이 구상하는 세계 체제는 국제무대의 중심과 얽혀있다. 국제무대의 권력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규칙에 따라 게임이 진행되는 근원지, 즉 워싱턴에서 왔다. 이 권력은 미국이 끊임없이 흥정하고, 대화하고, 의사소통하고, 공식적인 합의를 모색함으로써 행사된다.
미국 통치자들의 관점에서 군사 우위는 세계 전역에서 그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데 큰 의미가 있고, 권력의 성장은 그들의 군사 패권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부시 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의 선임 고문인 토머스 바넷에 따르면 2001년 이후 미국의 안보 구조가 확장되면서 세계 정치와 경제를 담당한 미국은 탈식민지 지역의 제멋대로이고 불안한 부분을 처벌함으로써 미국의 “핵심”을 보호할 수 있는 “군사 괴물”로 바뀌었다.
미국이 요구하는 안보 구조는 역사상 많은 제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과도한 팽창의 상징이다. 제국들은 국가 안보가 확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고 다른 나라들을 위협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미국은 군사 패권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안보는 확장을 통해 얻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세계에서 미국의 지배력에 도전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나라가 없는 가운데, 미국의 군사력 확장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는 나토의 동진을 예로 들어보겠다. 냉전의 산물로써 나토는 종전과 함께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절대 안보를 추구하기 위해 나토가 5군데에서 동진하도록 주도하고 회원국 수를 16개국에서 30개국으로 늘렸다.
나토의 확장은 멈추지 않았고, 새로운 확장 계획이 진행 중이다. 심지어 “나토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세계 전체의 38%를 차지했고, 상위 10위 안에 든 다른 나라들의 군비 지출 총합을 넘어섰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의 군사비 지출은 세계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 즉 호주, 일본, 뉴질랜드, 한국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61퍼센트까지 올라갈 것이다.
세 번째 관점- 국내 정치 동인: 군산복합체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책 『전쟁』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일 뿐이다”라며 군사와 정치의 관계를 밝혔다.
미국의 군사력 확장과 패권주의는 그들만의 독특한 정치 시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시장의 다양한 권력과 이익집단이 미국의 군사 패권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 미국의 지배계층으로서 미국의 정책을 납치한 군산복합체는 미국 지배층의 일부가 되어 미국의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전차 시스템”을 추진해 왔다.
‘군산복합체’라는 표현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제안하였다.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17일 “고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군산복합체는 미국의 강력한 군사 조직과 무기 산업 사이의 결합을 뜻한다. 현재 군산복합체는 주로 정부의 모든 부서, 국방 관련 기업, 의회, 학술기관 등 4개의 주체로 구성된다. 또한 언론과 로비단체 등도 포함된다.
군산복합체는 초이익 집단들의 거대한 연합이다. 각 부분은 상호보완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함께 상호 의존과 협력의 포괄적인 관계를 구성한다. 그들에게는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를 부추기는 큰 요구가 있으며,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패권주의의 결실을 나눠가질 능력이 있다.
2022년 3월 전 미 국방부 관리 프랭클린 스핀은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 언론, 싱크탱크, 학계, 정보기관 등과 결탁했다고 밝혔다. 이 이익 사슬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제2장: 군사 패권 유지를 위한 미국의 행위와 수단
미국 ‘타임’지의 공동 설립자인 헨리 루스는 1941년 “미국의 세기”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기사에서 “우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목적과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수단을 위해 우리가 가진 영향력의 전부를 세계에 행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사적 우위의 지속 여부는 통제에 달려 있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군사 패권을 유지하려 전쟁에 착수하거나 개입하며 국제 거점 연결망을 구축하는 등의 명시적인 수단을 동원해 직접 통제해 왔다.
뿐만 아니라 동맹 체제, 규칙, 작동 원리 등 암묵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간접적인 통제권을 행사해 왔다. 새로운 상황에 맞게 새로운 개입 유형과 새로운 방법을 채택하고 군사적 개념, 전투 개념을 개발하여 고유의 장점을 유지해 왔다. 이를 통해 잠재적인 경쟁국이 미국과 동등해지는 것을 억제하며, 경쟁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막고 있다.
◼2.1 명시적 통제: 전쟁과 기지
전쟁과 군사 작전은 미국이 군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전쟁은 이 나라 역사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전쟁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전쟁 그 자체가 미국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쟁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고 미래의 제국을 형성할 것이다.” 프랑스 역사가 토마스 라비노는 미국과 전쟁 사이의 “깨질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으로 형성됐고, 전쟁으로 몸을 불렸으며 전쟁으로 부름 받은 폭군인 미국은 지난 240여 년 동안 세계 패권의 정점에 올랐다. 이는 독립전쟁, 인디언 전쟁, 멕시코-미국 전쟁, 남북 전쟁, 스페인-미국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코소보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등 끝없는 전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패권을 실은 전차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전략적 입지를 다지며 세력권을 확장해 왔다. 미국의 영토는 건국 초기 약 80만 평방킬로미터에서 현재 약 937만 평방킬로미터로 10배 이상 커졌다. 미국은 군사 개입, 쿠데타, 대리전 등을 통해 중남미와 카리브해 국가들을 ‘뒷마당’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중동 등 유라시아 국가들을 지정학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으로 중요한 자원이 있는 해상 통로를 점령했다. 미국은 하와이와 웨이크 아일랜드 등 태평양의 많은 섬들을 합병하고 필리핀을 식민지화했으며 파나마 운하 건설을 강요했다. 또 중국에 대한 이해관계를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 나누고 아프리카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군사 행동을 통해 중요한 자원과 물자를 통제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으로 동맹국들을 단결시키고 반체제 인사들을 제거했다. 9.11 사건 이후 ‘대테러’를 기치로 내건 미국은 전 세계 85개국에서 전쟁이나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국 등 기관들은 불법적이고 비밀스러운 작전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미국에 반하는 외국의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등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기전, 장기전, 세계전, 냉전, 비밀전, 대리전, 대테러전 등 패권을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끝없는 전쟁이 미국을 스파르타 식 국가(군사 정책에 중점을 두는 전쟁국가 -역자 주)로 만들고 있으며, 영원한 전쟁 상태로 끌고 가는 중이다.
전 세계의 군사 기지들은 미국이 세계를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군사 기지는 미국이 억지력과 군사적 개입을 가하는 최전선이다. 미국은 군사 기지를 닻으로 삼아 북극에서 희망봉까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세계 곳곳에서 군사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외 미군기지가 크게 늘었다. 1940년 9월, 미국은 파산 직전의 동맹국인 영국이 영국령 식민지의 해상 및 공군 기지의 통제권을 자신에게 넘기는 대가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구축함 50척을 제공했다. 이는 전 세계에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야망을 반영한 것이다.
1943년과 1944년 미국의 군사 계획가들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미국의 패권적 힘을 전제로 해외 기지의 체계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전 대륙에 약 2,000개의 기지를 건설하여 점령했고 약 3만 개의 군사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 군사 기지들이 계속 확장되어 미국의 “전략적인 변경”이 되었고 미국이 “사실상의 주권”을 행사하며 넓은 지역을 장악했다.
냉전 시기 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