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짚어보기] ① 미국 겨눈 ‘세계 다극화’…국제질서가 요동친다 (2023. 9. 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9-19 09:24 조회591회관련링크
본문
[브릭스 짚어보기] ① 미국 겨눈 ‘세계 다극화’…국제질서가 요동친다
남아공서 열린 15차 브릭스 정상회의
기사입력시간 : 2023/09/06 [12:39:00]
박명훈 기자
머리말
지난 8월 22~24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5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잠재력이 높은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이 모인 브릭스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등 입지가 부쩍 커졌다. 정상회의에서 나온 주요 내용과 브릭스의 과제 등을 두 편으로 나눠 싣는다.
① 미국 겨눈 '세계 다극화'…국제질서가 요동친다 ② 네 가지 측면으로 본 과제 |
1. 남아공서 열린 15차 브릭스 정상회의
지난 8월 22~24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아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15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브릭스 정상들은 국제사회의 다극화에 바탕을 둔 주권국가 간 상호 존중과 협력, 회원국 확대 등에 합의했다.
정상회의에는 회원국인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이 참석했다. 주최국인 남아공은 개발도상국, 신흥국 67개국 정상을 비롯해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 및 지역 기구 지도자도 초청했다. 정상회의에는 초청받은 정상 가운데 최소 34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릭스 회원국을 비롯해 다양한 신흥국과 지역의 정상급 인사들이 한 데 모인 정상회의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다. 국제사회에 미치는 브릭스의 영향력이 반영된 것이다.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 「4월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한 수정 전망」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만 해도 당시 브릭스 5개국의 경제 규모는 구매력 평가 기준 16.9%에 그친 반면, 미국 등 서방의 경제협의체인 G7은 44.9%였다.
그러다 2010년 들어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26.6%로 성장했고 G7은 34.3%로 줄어들었다. 올해 들어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32.1%로 올라섰고 29.9%로 쪼그라든 G7의 경제 규모를 제쳤다. 올해 브릭스와 G7의 경제 규모는 2023년 4월 기준 IMF의 추정치다.
유엔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브릭스는 올해 기준 전 세계 인구의 42%, 영토의 26%, 교역량의 18%를 차지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서방의 입지가 축소하는 것과 반비례해 브릭스의 입지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의 입지와 달리, 과거 브릭스는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기구가 아니었다. 애초 브릭스(BRICS)란 표현부터 2001년 미국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인 짐 오닐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나라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명칭이었다. 이후 2006년 브릭스 국가의 외교 수장이 만나 경제협의체 구성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2009년에는 러시아에서 첫 정상회의가 열렸다.
과거 미국이 이름을 붙인 브릭스가 오늘날 세계 다극화를 내세우며 ‘미국의 대항마’로 주목받는 상황은 사뭇 역설적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브릭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브릭스 정상회의는 2009년 러시아에서 1차 회의를 시작한 뒤, 매년 브릭스 회원국이 돌아가며 주최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9년 브라질에서 열린 정상회의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4년 동안 비대면으로 진행된 바 있다.
과거 브릭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서방 주요 언론은 이번에는 정상회의와 관련한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이 역시 최근 국제사회에서 부쩍 높아진 브릭스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재까지 브릭스의 기본 성격은 경제협의체다. 그렇지만 브릭스 차원에서 브라질, 인도, 남아공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등,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협력도 점차 넓혀가고 있다.
2. 포용적 다자주의, 상호 존중 강조한 ‘브릭스 정신’
1) 요하네스버그 2차 선언 분석
브릭스가 정상회의를 통해 제시한 포용적 다자주의, 상호 존중, 주권국가 간 평등, 국제사회의 연대와 민주주의 가치가 강조된 이른바 “브릭스 정신”도 주목을 받고 있다.
8월 23일 브릭스 정상들은 요하네스버그 2차 선언(아래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는 ‘브릭스와 아프리카: 상호 가속화된 성장, 지속 가능한 발전, 포용적 다자주의를 위한 동반자 관계’를 주제로 94개 항이 담겼는데 중요한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선언 2항은 “우리는 상호 존중하는 브릭스 정신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며 이해, 주권적 평등, 연대, 민주주의, 개방성, 포괄성, 협력과 합의를 강화했다”라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정치·안보·경제적 세 기둥 아래에서 협력”하겠다고 명시했다.
또 “평화 증진을 통해 우리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 공정한 국제질서, 활성화되고 개혁된 다자 체제, 지속 가능한 개발 및 포용적 성장, 포용적 다자주의를 위한 동반자 관계를 위해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브릭스는 상호 존중, 주권적 평등,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다자주의 등의 표현으로 ‘세계 각국이 동등한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부각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방을 대표하는 미국이 북·중·러를 자극하며 진영 대결과 전쟁 위기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 것과 대조되는 움직임이다.
선언 7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포괄적인 개혁을 지지하고 개발도상국의 대표성과 민주성을 높여 “국제사회의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유엔 안보리는 세계 곳곳에 군대 파견(전쟁 개입), 유엔 사무총장 선출, 유엔 회원국 가입 및 축출 건의, 특정 국가를 향한 제재를 실시할 강제력을 가진 국제기구다. 그런데 현재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5개국 가운데 서방(미국, 영국, 프랑스)의 비중이 과반이다. 브릭스의 주장에는 국제사회의 다수인 개발도상국이 안보리의 새로운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는 등, 서방에 유리한 안보리의 구도를 혁신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선언 22항은 미국을 거론하며 “테러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균형 잡힌 접근”과 “테러와 극단주의에 대항하는 이중 기준 거부”를 강조했다. 이는 유엔 안보리와 유엔 총회 등에서 북·중·러·이란 등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이스라엘에 침공당한 팔레스타인의 참상에는 눈을 감는 미국의 이중 잣대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선언은 “브릭스 대테러 전략에 기초한 5개의 실무그룹 활동을 환영한다”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브릭스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안보 상황에 함께 대응하는 실무기구를 가동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선언 45항에는 “재무부 장관 또는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브릭스 통화 협력, 지불 수단 및 플랫폼을 연구하고 다음 정상회담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라고 적시됐다. 이는 브릭스 차원의 단일 통화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탈달러’ 행보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살펴본 선언을 통해 브릭스를 경제·정치·안보 등 다방면에서 협력하는 국제기구로 발돋움시키려는 의도를 살필 수 있다.
이 밖에도 브릭스는 선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지지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도 제재를 하지 않는 WTO(세계무역기구) 개혁 ▲니제르의 주권과 영토 보전 지지 ▲팔레스타인 지지 및 팔레스타인에서 폭력과 불법적 만행을 일삼는 이스라엘 비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구성된 G20(주요 20개국) 지지 ▲세계 식량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브릭스 회원국의 책무를 강조하는 등 한목소리를 냈다.
2) 빗나간 서방의 예측…회원국 확대한 브릭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의 발언에서 “더 많은 나라들이 가족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브릭스 확대를 가속화해야 하며, 브릭스 플러스(BRICS Plus)라는 협력 형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브릭스 회원국 확대와 함께, 회원국이 아닌 나라들도 브릭스의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방 언론은 브릭스의 외연 확장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브릭스가 반서방 기구로 확대되는 걸 경계한 인도와 브라질이 회원국을 늘려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구상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도와 브라질이 브릭스의 회원국 확대를 지지하면서 서방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 뒤에도 서방 언론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브릭스는 G7, G20 등 서방 기구의 대항마가 아니다’라고 했다면서 회원국 확대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했다.
그런데 룰라 대통령의 말은 오히려 브릭스가 진영에 상관없이 더욱 많은 나라를 들여야 한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 같은 특정 국가가 아닌 다양한 국가의 목소리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중국, 러시아의 주장도 결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회의에서는 초청을 받아 참석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도 눈에 띄었다.
현 국제정세를 여러 나라의 입지가 강해진 “다극 세계”로 진단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금융 질서가 “낡고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며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강력한 다자기구 없이 다극 세계의 안정은 보장되지 않는다”라며 브릭스에 힘을 실었다.
그동안 미국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지적을 받던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과 엇서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다자주의를 옹호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읽힌다.
현재 패권이 쇠락하는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을 겨눈 ‘경제 약탈’과, 대중·대러 경제 제재 등 대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제사회가 함께 발전하자는 브릭스 식 다자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정상회의에서는 사이가 좋지 않던 나라들을 브릭스로 한 데 아우르는 등 눈에 띄는 일들도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짚어보자.
브릭스는 선언 91항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정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가입을 앞둔 6개국은 하나같이 각 지역에서 중요한 입지를 가진 국가들이다.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은 경제와 인구 규모를 가진 아르헨티나는 브릭스에 가입해 심각한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는 분위기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인구가 1억 명이 넘고 아프리카에서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두 국가는 그동안 미국 등 서방을 통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개선하려 했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두 국가는 브릭스 내에서 남아공과 함께 아프리카의 발전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이슬람권 국가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관계가 험악했다. 특히 반미 국가인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이고, 친미 기조가 강했던 사우디는 수니파의 종주국이라 서로를 적대했다. 수니파 주민이 다수인 UAE는 미국의 압박으로 활발한 경제 협력을 이어오던 이란과의 관계가 무너진 상황이었다.
이에 관해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는 8월 25일 방송에서 최근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우디, 이란, UAE가 함께 가입한 점이 “인상적”이라면서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국가들이 브릭스를 통해서 모이고 있다”라고 짚었다.
브릭스가 추구하는 가치가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볼 수 있다.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8월 24일에는 남반구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이 참여한 브릭스 플러스 대화, 브릭스-아프리카 아웃리치(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을 직접 만나는 행위) 등이 진행됐다. 이때 참석한 정상급 인사 50여 명 모두에게 연설 순서가 돌아간 점도 눈에 띈다.
국제사회의 포용적 다자주의와 상호 존중을 강조한 브릭스 정신이 말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계속)